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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우/미디어오늘 전문위원 |
이명박 대통령은 6월6일 제57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자들은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자’를 언급한 것은 지난달 28일 “북한도 문제지만 우리 내부의 종북세력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 후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 대통령은 서울 국립현충원을 찾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몸 바친 호국영령들의 뜻을 받들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어떤 자들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한 북한도 개혁, 개방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철통같은 안보 태세로 한반도 평화를 수호하고 도발에는 준엄하게 응징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북한이 아웅산 테러와 천안함 폭침을 우리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우리 국민 일부가 이에 동조하는 현상을 언급하면서 ‘종북세력’이란 단어를 직접 사용해 이른바 북한 추종세력을 비판했다. 이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직접 ‘종북세력’을 비판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자’나 ‘종북세력’은 한국 사회에서 국가보안법 등으로 처벌받는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행위도 포함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 용어는 그 개념이 대단히 포괄적이고 때에 따라서는 애매하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거듭된 발언은 이념논쟁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자초한다.
더욱이 이 대통령의 발언은 통합진보당 사태로 빚어진 여야의 공안정국, 색깔론 논란 속에 나온 것이어서 대통령이 정쟁을 부추긴다는 측면도 있다. 이념논쟁은 냉전이 종식된 뒤 국제사회에서는 사라지고 유독 한반도에서만 아직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선진화, 세계화를 기회만 있으면 강조하는 이 대통령이 구시대적인 정치적 흉기를 들먹이는 것은 볼썽사납다.
대통령이 연이어 색깔론으로 치달을 수 있는 발언을 했지만 아직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자’나 ‘종북세력’이 수사기관의 수사 대상이 되거나 법원에 의해 판결나지도 않은 상태다. 현재는 정당이나 일부 언론이 근거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여론전을 펴는 단계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이 이런 상황에서 공식석상에서 관련 발언을 연이어 내놓는 것은 자칫 사정당국에 수사 등을 주문한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현 정권 하에서 검찰이 정권의 시녀라는 비아냥이 비등하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다. 현재 유럽의 경제위기로 인한 국내 경제 상태가 심각한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간 갈등 심화, 미국과 중국 등의 군비증강에 따른 동북아의 동요 등이 동북아의 평화, 안전은 물론 한국의 중장기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근거가 불확실하고 이 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이념문제를 부각시키는 언행을 반복하는 것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두 조각 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임기 만료 때까지는 전체 국민의 대통령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개 정당의 우두머리거나 정략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행동을 한다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게 된다. 대통령은 통합진보당 의원들에 제기되는 색깔론, 종북 타령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가려질 때까지는 사태를 불필요하게 악화시키는 발언은 자제하는 것이 옳다. 대선을 앞두고 진보세력 전체에 대한 매도와 사회적 위상 왜소화라는 노림수가 담긴 정치적 책략에 대통령도 한 몫 끼어드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자’나 ‘종북세력’이 심각하다고 여기고 있다면 청와대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나타나는 민간인 불법사찰이나 대통령 측근, 친인척이 관련된 각종 범죄형 사건 등이 사회에 미치는 심각한 해악도 살펴야 한다. 대통령은 현직 법무장관이나 청와대 비서관 등이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이는 사건에 대한 수사가 검찰에서 진행되는데도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하야했던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행위가 현 정부 일각에서 벌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되는데도 대통령이 나 몰라라하는 것은 너무 부자연스럽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자’나 ‘종북세력’의 위험성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정부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형 부정부패로 인한 위험성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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