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김가다는 실로 35년 만에 젊은날의 애환과 열정이 깃들어 있는 해방촌을 찾았다. 그곳은 김가다가 청년 시절에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사이에 끼어 터질듯이 답답한 영혼을 가슴으로 쥐어뜯고 살았었던 단칸방이 기억나는 곳이었다.
해방촌 시장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길에서 조금 돌아앉은 막다른 골목에 그 단칸방이 붙어있던 외챗집이 아직도 재건축도 못한채로 빛바랜 기와지붕을 머리에 인 채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옛날엔 판자 쪼가리로 얼기설기 해 달았던 대문이 지금은 알미늄 대문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화장실이 있었던 곳에 빨간 벽돌로 방을 한칸 더 달아지은것 외에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어머니는 함께살던 영감님의 (김가다의 의붓아버지)아침상을 차려주고 나서 부랴부랴 그 대문을 열고 화장품이 가득담긴 가방을 머리에 이고 외판을 나가시곤 했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노가다 판에다 목숨을 걸고사는 하루살이 인생들이었고 여자들은 식당에 나가 허드렛일을 도와주거나 봉투를 붙여 하루땔 연탄몇장 사들고 오는 정도였다.
동네에 혼자사는 젊은 여자들도 몇 명 있었는데 하나같이 사날에 한번씩 맞이하는 단거리 기둥서방이 던져주고 가는 지폐 몇장으로 근근이 목구멍에 풀칠하고 사는 모양이었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골목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아카시아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조그만 언덕 아래 루핑으로 대강해 덮은 흙담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것이 명수네 집이었다.
명수는 중동고등학교 다녔었고 축구 선수였는데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 곧바로 중앙대학교 축구부에 스카웃 되었다.
왜 장녀인 명수네 엄마가 김가다의 엄마와 친하게 지냈던 이유로 명수와 김가다도 자연히 가까워 지게 되었고 둘은 곧 친구가 되었지만 김가다는 광성고등학교에서 불미스런 일로 퇴학을 당하고 나서 곧 그 동네를 떴었다.
훗날 김가다가 군에서 제대한 뒤에 명수네 집을 찾았을때 명수 엄마는 해방촌 시장 한모퉁이에서 대폿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행길을 사이한 맞은편에 즐비한 술집에서 명수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다보면 마주보이는 명수엄마네 집 대폿집에서는 어김없이 아랫녘 장수로 먹고사는 논다니들이 부르는 노래 장단에 맞추어 술꾼들이 젓가락으로 술상을 두드리고 날밤을 까고 있었다.
“아아! 신라의 밤이여어, 성불사의 종소리 울리어 올때...”
그 당시 술집에서 유행처럼 흔하게 흘러나오는 신라의 달밤이었다. 언젠가 살을 에일듯한 고추 바람이 불던 날 밤 김가다가 명수와 함께 해방촌 시장 골목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어깨동무를 한 채로 술집을 나섰을 때였다.
명수네 엄마 대폿집이 발칵 뒤집혀져 있었다. 술을 마시던 깡패들이 술상을 홀랑 뒤집어 엎고 여자들의 머릿채를 움켜쥔채 쥐잡듯이 흔들어 대고 있었다.
명수엄마가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살똥스레 대들자 깡패한놈이 명수엄마의 따귀를 냅다 올려부쳤다. 명수엄마가 대폿집 한쪽 구석으로 풀잎처럼 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술이 확 깨어버린듯 정신이 번쩍 난 김가다와 명수가 쏜살같히 대폿집을 향해 달려갔다. 명수가 휙 몸을 날려 놈의 가슴팍을 오른발로 힘껏 내질렀다. 명수는 축구선수이긴 했지만 남산일대에서 소문난 주먹이었다. 김가다도 탱크처럼 달려들어 덩치가 우람한 놈의 얼굴에다 특유의 박치기를 들이박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명수가 동그란 나무의자를 번쩍 치켜들더니 또 한놈의 머릿통을 후려쳤다. 놈이 그 자리에 푹 고꾸라지더니 회초리 맞은 개구리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결김에 김가다와 명수는 놀라서 이태원쪽으로 도망치는 놈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초 죽음이 되다시피 때려주었었다.
그날 김가다와 명수는 출동한 경찰관에 붙들려 파출소로 끌려갔었는데 마침 용산경찰서에서 형사로 근무하고 있던 명수의 외삼촌이 힘을 써준 덕분에 간신히 풀려난 일이 있었다.
오늘 김가다는 명수네 집을 찾아보기로 한것이었다. 명수네 옛날 흙담집은 흔적도 없고 그 자리에 빨간 벽돌로 지어진 조그만 기와집이 한 채 서 있었지만 어쩐지 궁색한 기운이 뚝뚝 흐르는 집이었다. 대문에 붙어있는 초인종을 누르자 머리가 하얗게 세고 얼굴이 저승꽃으로 뒤덮힌 남자가 미간을 좁히며 나왔다.
“여기 혹 강명수씨댁 맞습니까? 엇! 너 명수아냐. 명수맞지?”
“야! 이게 누구야, 김가다 아냐? 네가 어쩐일로 이렇게 느닷없이 나타났냐? 야! 이 자식 늙지도 않았네. 뭐 불로초 먹고 살았냐?”
명수는 김가다의 팔을 끌고 옛날에 자주 들렀던 해방촌 시장의 어느 허름한 술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는 앉자마자 주인 아주머니에게 선지해장국 두 그릇을 시켰고 소주부터 먼저 달라고 급하게 말했다. 그제서야 명수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본 김가다는 명수의 주름살의 계곡에 고생스런 삶의 흔적이 너무도 역력하다고 생각했다. 김가다는 담배랑 소줏잔을 내미는 명수의 손길을 조그맣게 마다하고 조금은 긴장된 말투로 말했다.
“그나저나 얼굴이 많이 상했는데 너 많이 힘들게 살아던 모양이구나. 가족들은?”
“김가다 난 노예야. 노예가 되어 버렸어. 노예생활로 하루하루 목구멍에 풀칠하고 살아. 마누라는 바람이 나서 딸 하나 있는거 데리고 나가 소식이 없는지 벌써 10년이 넘구. 외롭고 쓸쓸한 나머지 오다가다 만난 과부하나 집에 데려다 놓고 살았는데 그년이 글쎄, 집구석을 들머리판 내 놓고 내뺐어. 먹고 살아보려고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는데 무슨 다단계회사에다 다 쓸어박아 버리는 바람에 덜렁 빚덩이에 올라 앉아버렸지 저 집도 얼마 안있어 은행에서 경매처분할거야. 어디 쪽방에라도 들어가 살 판이야.”
“그것참. 기가막힌 일이네. 그렇다 해도 노예라니 대체 그게 무슨말이냐?”
김가다가 막 날라져온 선지해장국을 입에 떠 넣으며 물었다.
“새벽 5시까지 남영동에 있는 용역업체앞에서 일자리를 찾고있지. 용케 봉고차를 타게되면 하루종일 노가다로 일당 5만원 받는데 그걸로 밥값, 술값, 담배값 하고나면 금새 무일푼이야. 그마저 용역업체측에 한번 찍혔다 하면 노가다 바닥에서 발 붙이고 살 희망마져 없어. 일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치료비만 주고 일당은 주지도 않아. 용역업체 놈들은 거의가 다 깡패니까 찍소리도 못해. 아무리 허수아비 정부라지만 이 좁은 땅에서 깡패들 하나도 제대로 잡아놓지 못하냐? 그 새끼들 말이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내야해. 우리같은 엉세판 인생들은 노예, 인간쓰레기지 내 팔자가 그렇게 되어 버렸다.”
명수는 소줏잔을 연거푸 목구멍 속에 털어 넣으며 그렇게 하얗게 부서지며 절망했다.
“김가다. 희망이 없다. 난 희망이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하루살이 노예야.”
그때 TV앞에서 어느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명수가 그녀를 보며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씹어뱉듯 말했다.
“쓰벌! 야. 김가다. 난 제발 저 여자 좀 안 보였으면 좋겠어. 우리는 하루하루 죽지못해 사는데 저 여자는 뭐가 그리 좋다고 허구한날 저렇게 화사하게 웃고만 다닌다. 저 여잔 우는법이 없어. 하긴 뭐 수많은 남자 국회의원들이 까맣게 줄서서 너도나도 궁뎅이 떠받들어 주느라 대가리가 터질지경이니 웃을만도 하지. 크흐흐흐”
“명수야, 울 줄 모르는 된장 정치꾼들이 어디 저 여자 뿐이더냐?”
명수와 헤어져 돌아오는 전철속에서 김가다는 줄곧 가슴에서 비가 내리는 느낌이었다.
“괜히 명수를 찾아갔었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토록 가슴이 아프진 않을텐데....”
전철속의 수많은 백성들이 동그란 손잡이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매달아 놓은 채 고달픈 눈빛으로 차창을 달려가는 도시의 불빛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결 같이 핏기 없이 해쓱하기만한 그 얼굴들에 드리워진 무거운 삶의 그림자가, 희미한 형광불빛 아래서 늙은 뱀 껍질처럼 힘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