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본인은 도심에 살면서도 자주 바닷가를 찾곤 했다. 바닷가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갯벌에 구멍을 내고 은신처로 삼기도 하고 숨구멍의 역할도 하면서 분주히 살아가고 있었다.
본인은 인간의 눈으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작은 생명체의 움직임을 오랜 시간 숨죽이고 바라보면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긴 시간 조용히 응시하면서 바스락 거리는 생명의 소리를 들은 것이다.
갯벌은 ‘생명체의 무한한 장’이었다. 자연스럽게 바닷가를 오가면서 드넓은 모래사장 또한 자주 걸었다. 그리하여 섬세한 모래 위에 남겨지는 발자국,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 놓은 물길을 또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무구한 세월 동안 갈고 닦였을 자갈, 그 억겁의 세월을 품고 있을 매끈한 자갈을 스쳐 지나며 물은 생명처럼 길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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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숙 |
수없이 반복되어 쓸려갔다가는 다시 새겨졌을 물길에서 인생의 길을 본 것이다. 사랑하는 바닷가. 그 잔잔한 모래 위에 새겨진 생명의 움직임, 더러는 새가 지나간 흔적, 또는 밀물과 썰물이 빚어낸 아름다운 길을 단지 기록적인 묘사에 그치고 싶지 않다.
그 대상을 빌어 바다에서 받은 인상을 인간 내면의 세계와 동일시시키고 싶은 것이다. 이번 작품은 ‘바닷가-생명의 길’로 주제를 정하고 우주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삶의 동일성을 그려보고자 한다. 이는 인간의 삶과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풍파가 없는 삶은 고요하기는 하되 깊이가 부족하고, 많은 역경을 이겨낸 사람은 굴곡은 있으되 겸손하며, 마음을 움직이는 진실한 보석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