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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민/외과전문의 |
어린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국민학교 교정에 어느날 온통 하얀색 복장으로 무장한 일련의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이들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에서 기구들을 주섬주섬 꺼내놓기 바빴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어린이들은 하나 둘 동요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교실은 아비규환의 장소로 급변한다.
하얀색 사람들이 꺼내 놓은 기구들은 다름 아닌 모든 어린이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말로만 듣던 ‘불주사’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마지못해 번호순으로 줄을 서서 한참 앞 친구들이 주사 맞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의 공포감이란….
그냥 주사만으로도 충분히 아프고 두려운데 한술 더 떠 매번 주사를 놓을 때마다 주사바늘을 바늘에 달구기까지 하는 하얀색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악마와도 같은 형상으로 어린이들에게 다가왔다. 60~70년대 당시 국민학생들로 하여금 잊을만하면 찾아와 공포에 떨게 했던 ‘불주사’의 추억이다.
뭐니 뭐니 해도 주사기는 병원의 으뜸가는 상징이다. 하지만 주사기는 그것이 주는 통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며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병원하면 의례껏 아픈 주사기의 공포를 떠올리게 된다.
주사기는 질병 치료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존재다. 아무리 좋은 약을 개발해도 이 주사기라는 도구가 없다면 효과적으로 약을 체내에 주입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제대로 된 주사기가 발명됨에 따라 의약학자들에게 이에 걸맞는 약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의지를 심어줄 수 있었다. 반대로 주사기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많은 경우의 약물은 개발되지 않았을 것이다.
1844년에 속이 비어있는 관 형태의 바늘이 발명된 것을 계기로 1850년대에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주사기가 개발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 전에는 칼로 피부를 절개하여 약물을 억지로 주입하기도 하였다니 주사기의 개발은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사실 위에서 언급된 ‘불주사’는 1회용 주사기가 없던 시절, 여러 사람에게 같은 주사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기에 소독 목적으로 주사바늘을 불에 달구어 사용했던 것을 일컫는다. 지금 생각하면 위생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당시 상황으로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리라. 현재는 진화를 거듭하여 보다 저렴하고 보다 간편하며 위생적인 1회용 주사기가 널리 보급된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주사기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이 때문에 주사기는 필자를 포함한 적지 않은 이들이 병원에 가기를 꺼리게 하는 결정적 이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최근 주사바늘 없이 고압을 이용하여 순간적으로 약물이 피부를 통해 흡수되게 하는 통증 없는 주사기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아직 완전히 실용화 되지 않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기다리면 주사 맞기 두려워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마음 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