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모두 굴왕신처럼 가난을 뒤집어쓰고 살았다. 찌는듯이 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10리도 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배도 고프고 목이 몹시 탔던 탓에 행길 옆에 있는 양조장으로 들어갔다. 펌프질을 해서 물을 한바가지 마신 뒤에야 김가다는 눈앞에 펼쳐진 믿기지 않는 광경에 정신이 번쩍났다. 널따란 시멘트 바닥에 하얀 쌀밥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었다.
도시락을 제대로 싸서 다닐 수 없을만큼 가난했던 탓에 배가 몹시 고팠던 김가다는 어른들의 눈치를 흘금거리며 그 하얀 쌀밥을 손으로 마구 입에 쑤셔넣었다.
그 후로 김가다는 버릇처럼 그 양조장에 들러 물을 마시는척 하얀 쌀밥을 훔쳐 먹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아침에 집을 나서기전 책가방에서 책을 모두 빼어 뒤꼍에 있는 빈 장독 속에 감추어 놓고 빈 가방만 들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안 보이는 틈을 타 그 쌀밥을 빈 가방 속에 마구 쓸어담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논틀밭틀 사이를 내 달렸다.
그렇게 훔쳐온 쌀밥을 집에 갖고와서 무쇠솥에 넣고 물을 조금 더 부어 밥을 불려서 온식구가 나누어 먹었었다.
훗날에야 김가다는 그 하얀 쌀밥이 술을 빚는 고두밥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양조장에서 일하던 아저씨들은 김가다가 고두밥을 몰래 훔쳐 먹는 것을 알고도 일부러 못본척 했다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뱀껍질처럼 지독한 가난은 김가다가 군에서 제대할 때까지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집에 쳐박혀 있자니 가슴이 폭발할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시에도 어머니는 20년 넘게 함께 살아온 영감님과 해방촌 산동네의 단칸방에 세들어 살고 계셨다.
낮에는 이 친구 저 친구를 찾아 다니며 술을 얻어마시고 밤늦게 그 단칸방으로 돌아와 영감님과 어머니 사이에 끼어 잠을 잘려니 머리에서는 연일 지진이 이는 느낌이었다.
“나가자 이 집을...”
그렇게 마음 먹은 어느날 김가다는 조그만 배낭에다 셰익스피어랑 헤밍웨이 원서 몇 권을 집어넣고 집을 나섰다. 무작정 터미널에서 버스를 집어타고 내린 곳이 양주땅 회암리라는 산골동네였다.
김가다는 그곳에서 직업군인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 누나를 찾았으나 할 일이 마땅치 않아 술로 세월을 보내며 궁뚱망뚱 청춘을 갉아먹고 있었다. 마침 서울사람이 사놓은 향나무밭을 관리해 주는 조건으로 거북이 등처럼 납작한 오막살이 한 채를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김가다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새끼돼지 다섯 마리를 사서 돼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게 촌구석에 내려와서 돼지나 키우고 살겠다는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가 몹시도 속이 상했을터인데 현실이 그 지경이니 어머니인들 김가다를 야멸딱지게 말리지는 못하셨을 것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화장품 외판을 다니시다 부잣집 세파트에게 물려 피를 철철 흘리며 땅거미를 이고 들어오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김가다는 지금도 눈시울을 붉힌다.
하지만 당시 1차 오일쇼크 때 돼지값이 폭락했던 탓에 그마져 별볼일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8마리를 남겨 몇달 악전고투해서 기른 탓에 그나마 조금 좋아진 값으로 돼지를 팔 수 있었다. 그때 8마리 돼지를 판 값이 30만원이었고 김가다는 그 돈으로 산자락을 낀 외딴 곳에 7백평쯤 되는 땅을 샀다.
“그래...이제 촌놈이 되는거지 뭐. 서울쪽으론 오줌도 안쌀테야. 돼지랑 개를 키우고 살자. 닭도 키워서 알이나 받아먹고 말이지...”
그렇게 20년 세월을 친구들이랑 소식 딱 끊고 회암리에 쳐박혀 주충처럼 술에 절어 살았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일구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꿈도 꾸어보지 않았다.
“내 청춘을 보상받을 곳은 이 곳밖에 없는거야...”
고교시절에서 대학 때까지 김가다의 가슴에서 꺼지지 않고 불꽃처럼 솟고라졌던 작가에의 꿈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천박한 좌절과 자학의 쓴잔을 마시며 허구한날 불풍나도록 술집을 들락거렸다. 그때 하나님이 김가다를 내려다 보시고 몹시 불쌍해 보였던지 어느날 갑자기 김가다 앞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예쁜 소녀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그 소녀와 5년 열애 끝에 어렵사리 결혼을 했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선물로 받기까지 했다. 하지만 첫아이 낳기전만해도 동네 아줌마들이 김가다의 아내를 볼 때마다 혀를 찼고 시도때도 없이 김가다의 아내를 쿡쿡 찔러댔다.
“새댁, 글쎄 뭘 보구 저런 마적같은 놈하고 살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 아직 결혼신고도 않았다면서? 내 돈 많고 땅많은 집 총각 소개해줄게. 도망가버려.”
사람들이 그렇게 아내를 꼬셨어도 김가다를 향한 아내의 가슴은 일편단심이었다.
“모르시는 말씀들 마세요. 지금은 비록 저렇다해도 우리 남편은 언젠가는 꼭 훌륭한 작가가 될겁니다. 하나님이 꼭 그렇게 키우고 마실거에요.”
그런 어느날 김가다는 돼지막 청소를 끝낸 뒤 오동나무 그늘 아래 앉아 신문을 펼쳐들었다.
“하아니...이 친구가? 진짜 크게 성공했네?”
그것은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설 ‘인간시장’을 쓴 김홍신에 대한 기사였다. 순간 김가다는 뒤통수를 무엇에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똑같이 가난했고 똑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넌 이토록 세상을 발칵 뒤집은 유명 작가가 되었고 나는 겨우 이 촌구석에서...”
김가다는 실로 20년 만에야 출판사를 통해 얻어들은 전화번호를 두들겼다.
“홍신아...나야. 나. 여기서 이렇게 산다......”
전화를 받은 그가 그 이튿날로 김가다가 살고 있는 회암리까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물어물어 찾아왔다. 그후 그는 김가다네 집에 무슨 일만 생기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왔다. 그리고 김가다의 잠자고 있는 영혼의 창을 조그맣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 어서 글을 써.”
아내와 친구의 격려에 힘입어 김가다는 마흔다섯 늦깎이에 등단해서 지금껏 글을 써오고 있다. 그리고 김가다가 쓴 소설을 통해서 부부가 함께 KBS 아침마당에도 출연했고 얼마 전에는 CBS의 ‘새롭게 하소서’에도 출연했다. 이제 며칠 뒤면 김홍신은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세상에 내어 놓을 것이고 김가다도 10권짜리 대하소설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김가다는 조금전 그 친구와 서로 격려의 전화를 주고 받은 뒤 가슴으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태어나 좋은 친구 한 사람만 만나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는데 나는 좋은 친구들이 너무도 많구나...”
김가다는 그것이 더없이 행복했고 그래서 더더욱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느낌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