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쇼다. 100%는 아니겠지만 상당 비중은 쇼일 것이라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다.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똥물을 뒤집어쓰는 시늉도 정치인들은 피하지 않는다.
쇼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국민의 삶이 윤택해지고 자유와 정의, 인권과 평화, 평등과 복지가 실질적으로 신장된다면 ‘100% 리얼쇼’라도 마다할 필요가 없다.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지 않는다면 그 정치인의 속이 구렁이거나 호랑이거나 알 바 아니다. 덩샤오핑의 말처럼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 잡는 고양이가 최고/흑묘백묘(黑猫白猫)’일 수도 있다. 진짜 웃음을 선사하는 정치인을 야박하게 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안병용 의정부시장이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1월1일부터 4일까지 성남에 본사를 둔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를 찾아가는 출근투쟁을 했다. LH공사 사장을 만나 2013년 안에 고산지구 토지보상을 하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확답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면담 자체가 가로막히자 1인시위를 벌였다. 역대 시장이 주민들의 고통을 해결하겠다며 1인시위를 벌인 사례가 단 한번도 없었기에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런 면에서 안병용 시장은 판단이 빠른 정치인으로 급성장했다. 시민보호라는 명분을 잡아 전투적으로 LH공사를 치고 들어가는 결단은,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안병용 시장은 임기 초기인 2010년 11월 의정부뉴타운 반대운동이 시작되자 “서민 눈물 닦아주는 뉴타운으로 의정부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궤변을 일삼으며 뉴타운을 강행하다 민심이반을 부추겼다. 의정부시의회 이종화 의원과 쌍욕까지 주고 받았고, 신세계백화점 때문에 의정부제일시장 상인들과는 으르렁거렸다. 시민단체의 경전철 안타기운동에 대해서는 “코미디”라고 일축하는 등 ‘오만한 교수출신 시장’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그가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변하기 시작했다. 녹양동에서 차고지와 장례식장 개발문제로 주민반발이 고조되자 “시장 권한 범위 내에서 건축허가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올해 들어서는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고산지구 주민들을 살리겠다며 “이순신 장군의 심정”으로 “무례한 LH 놈들”을 찾아가 압박했다. 뉴타운 학습효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건 ‘친서민 현장 시장’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물론 1월10일까지 LH공사의 ‘2013년내 토지보상 약속’ 문서는 손에 쥐지 못했다.
안 시장 내심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엄동설한에 그 누구도 하지 않던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줬다. 아무나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게 비록 쇼일지라도. 안 시장은 덤으로 문제되지 않을 공식적인 선거운동까지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