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두 사람 중 누구도 그 숲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황당해하고 있을 무렵, 두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이 요리집이었다. 한식이나 일식 요리집인지, 칼국수나 라면을 파는 곳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주문이 많은 요리집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하루 종일 산속을 헤매다 보면 누구 할 것 없이 배고픔과 피로에 지쳐있을 테니까. 누가 메뉴판을 들고 나오지 않는 것쯤은 상관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주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짠 맛은 거절하고, 기름기가 많은 음식은 싫어하기에 마요네즈는 뺐다. 주문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면서도 따지지 않았다. 이름부터 주문이 많은 요리집이 아니었던가.
다른 요리집처럼 정해진 메뉴가 아니라 마음대로 취향에 따라서 음식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만 했다. 신기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주문이 하나씩 더해질 때 쯤, 어떤 요리가 나올지 기대는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기대만큼 배고픔도 점점 더 커져갔다.
그때까지도 두 사람은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이 주문한 음식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 기대했다. 그 따뜻한 음식을 먹고 기분 좋게 낮잠이라도 자고 나면,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 나쁜 기분이 말끔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은 마지막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주문을 한 사람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어달라는 마지막 주문이 전해진다. 그제야 두 사람은 눈치를 챘다. 두 사람은 주문을 한 것이 아니라, 주문을 받은 재료로 조리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1980년대 어린이들에게 광대한 우주에 대한 꿈과 환상을 펼쳐주었던 <은하철도 999>의 원작 <은하철도의 밤>으로 유명한 미야자와 겐지. 겐지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전개방식으로 마지막 결정적인 반전을 끌어냈다. 그 누구도 두 사람에게 음식을 준다거나 이곳이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단지 두 사람이 요리집이라는 간판을 보고 그렇게 믿었던 것일 뿐이다. 겐지가 만들어낸 기막힌 착각에 그냥 웃어 버릴까?
이번주 부산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21개국 정상들이 만나 무역투자자율화 및 원활화, 경제기술협력을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APEC이라는 간판을 단 이들은 몇 년 전부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문해 왔다.
얼마 전부터 들판에 찬바람을 휘몰아치게 했던 쌀시장 개방도 여기서 나온 주문 중 하나일 것이다.
APEC을 잘 들여다보면 쌀시장 개방을 주문한 구체적인 주문자가 턱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내 밥상 앞에서 내가 먹을 것을 집으려 하는데, 주문을 하는 것인지 주문을 당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밥상 관리자들 때문에 그 밥상을 고스란히 빼앗길 지도 모르는 이 위태로움.
나는 그것을 알 것 같은데, 어찌 이들은 APEC이라는 간판만 보고 그냥 믿어버리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마지막 주문이 전달되기 전에 다시 한번 상황을 파악해 보라는 주문을 먼저 전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