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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저자 |
군대 시절 부산에서 문서 마이크로필름화 작업 때문에 파견근무를 한 적이 있다. 오륙도 섬이 보이는 절경의 장소라서 파견 간 순간 황홀했다.
중식 후 바닷가로 내려가 볼 심산으로 걸어가는데 누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무어라고 한다. 얼굴을 돌려 쳐다본 순간. 아뿔싸, 코가 없이 콧구멍만 두 개 뚫려있다. 흔드는 손에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다. 한센씨 병에 걸린 환우였다. 그 곳에서 그들은 집단생활을 하며 양계를 하여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코가 불만인 사람들이 많다. 조금만 더 높았으면, 조금만 더 길었으면, 그래서 성형외과에 코를 고치려고 많은 여성들이 몰려온다. 한센씨 병에 걸린 이들이 보면 얼마나 웃기는 처신들일까? 납작코든 매부리코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시각장애인 센터에 가서 웃음치료로 봉사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보이지 않아 따라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일이 말로 설명하느라 힘이 훨씬 더 든다. 그러나 열심히 따라 하려는 그들의 모습은 더욱 숙연하고 열심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그들이 선천적으로 시각장애인이 된 경우는 적다고 한다. 살다가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인해 시각장애를 입게 된 것이다. 대개의 경우 2년 정도는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삶을 포기하려고 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이다. 새롭게 마음 먹고 살아가려고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보통 2년이라고 한다. 그 2년간 가족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삶이 계속된다.
노안이 와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눈이 작거나 다른 불만이 있어 쌍꺼풀 수술을 하는 이도 많다. 그러나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을 받고 사는 인생인가?
젊었을 때 우리는 사중창단을 만들어 병원에 이브닝콰이어로 봉사한 적이 있다. 13층에서부터 지하 재활병동까지 각 층마다 2곡씩 20여곡을 불러야 끝이 났다. 가끔 중환자실을 지날 때면 입으로 음식을 먹지 못해 식도에 구멍을 내고 알맞은 온도의 미음을 부어 위까지 공급하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입으로 씹어서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축복된 일일까? 길을 가다가 또는 전철 안에서 청각장애인들이 수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성대를 움직여 입으로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축복된 일인가?
병원에 가면 흔히 걷지 못해 휠체어에 의지해 남이 밀어줘야만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을 보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다가 눈을 뜨면 걷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는 어느 가수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나서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 발로 걷는 것만 하여도 이것은 너무나 귀한 축복임을 알았다고 했다.
웃음치유 암환우들 중엔 수술을 20번 넘게 하고 정상적인 배변활동을 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용변을 호수와 주머니를 통해 배출하고 있다. 대장을 통해 직장을 통해 정상적으로 대변을 보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인생이다.
장애인 올림픽에서 한쪽 팔이나 한쪽 다리를 잃고 육상경기나 수영에 도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이들을 보게 된다. 장애를 딛고 그들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는 두 팔, 두 다리 멀쩡히 가지고도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을 학대하는 이들도 많다. 두 팔, 두 다리, 손가락, 발가락 다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감사에는 조건이 없다. 주어진 모든 것에 무조건 감사할 따름이다. 조건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다는 존재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기에 충분하다. 웃다보면 ‘때문에’ 감사하는 것에서 ‘존재’로서의 감사로 바뀌게 된다.
조건을 보자면 감사 못할 조건은 하나도 없다. 나와 너의 존재, 세상만물이 각자의 위치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감사를 하게 될 때 참된 행복이 찾아올 것이다. 웃는데도 조건이 필요 없다. 그냥 살아있기 때문에 웃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