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자기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희망을 이야기했던 동화작가 황선미가 <나쁜 어린이표>(웅진푸른교실)를 통해 초등학교 교실 안에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냈다. 스티커로 착한 어린이와 나쁜 어린이를 구분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노란스티커로 만든 나쁜 어린이표를 준다. 지각한 아이, 싸우거나 수업시간에 말썽피운 아이, 숙제를 해오지 않거나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은 아이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나쁜 어린이표를 받아 자기 이름 옆에 붙여야 했다. 이유를 설명하려는 행동은 말대꾸였다. 자칫 노란스티커를 한 장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노란스티커를 받는 아이들은 정해져버렸다. 건우도 벌써 다섯 개나 붙이고 말았다. 청소시간에 누군가가 떠미는 바람에 화분을 깬 것을 시작으로 해서 노란스티커는 순식간에 늘어갔다. 건우는 말썽꾸러기가 아니다. 선생님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고, 나쁜 어린이표보다 착한 어린이표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건우에게 돌아오는 것은 노란스티커뿐이다. 반장의 말처럼 ‘원래 노란스티커를 받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건우는 자기가 자꾸만 노란스티커를 받는 이유를 반장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건우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반장과 몇몇 아이를 제외한 나머지에게 어떤 이유도 묻지 않았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선악을 구분했고, 그것을 아이들의 눈에 비치게 했다.
어느새 교실에는 두 부류가 생겨났다. 노란스티커를 받지 않은 아이들은 노란스티커를 받은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말이라도 걸면 자기도 노란스티커를 받는 나쁜 어린이가 된다는 듯 가까이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나쁜 어린이표를 받은 친구가 사실 나쁜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선생님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건우처럼 노란스티커를 받은 아이들이 나쁜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쁜 어린이표는 아이들을 쉽게 관리하기 위해서 선생님이 만들어낸 제도였다.
이런 제도가 조그마한 교실 안에서만 벌어지고 있을까?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장관의 사상 첫 지휘권 발동으로 촉발된 ‘강정구 교수 파문’은 확산되고 있고, 온·오프라인 상에서는 이념논쟁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마치 아이들이 노란스티커를 두고 나눠진 것처럼, 사실은 묻어둔 채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건우가 ‘원래 노란스티커를 받는 아이’가 되어 버린 것처럼 강정구 교수는 ‘원래 이념논쟁에 휘말려야 할 사람’ 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논쟁은 누구에게서 시작되었으며 왜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지를. 노란스티커로 아이들을 쉽게 관리하려는 선생님처럼 이념논쟁에 사람들을 휘몰아 넣는 아무 의미 없는 제도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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