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다의 생애중에 비슷하게 더러웠던 일이 딱 두번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1992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날 김가다는 고교 동창회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마신 소주 몇잔에 꽤 얼근해 있었다. 막차 시간이 가까워지자 조급한 마음으로 계단을 뛰듯이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때 어떤 아줌마 한분이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몹시 힘들어 하고 있었다. 나이가 한 50쯤 되어보이는 얽뚝빼기에다 몸이 뚱뚱한 아줌마였다. 나도 이 나이 되도록 남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살아왔다는 느낌이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말씀도 기억나고해서 선뜻 아줌마에게 말을 걸었다.
“아줌마, 들어드릴까요?”
“아유 이렇게 고마울데가...전철을 타야하는데.”
“뭐가 이렇게 무겁습니까?”
“된장이에요. 시골에 있는 언니가 된장을 한 말이나 담아주었는데 워낙 맛이 좋아서 염치불구하구 들고 오는건데 꽤 무겁네요.”
김가다는 그녀에게서 된장 상자를 받아들고 층계를 올랐다.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의정부 북부역까지요. 아저씬요?”
“저도 의정부 북부역까지 갑니다.”
전철은 사람들로 발 디딜틈이 없을만큼 빼옥했다. 김가다는 된장 상자를 안간힘을 쓰면서 선반 위에 올려놓고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김가다 앞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일어섰으므로 빈자리가 생겼다. 김가다가 자리에 얼른 앉으려다 말고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세요 아주머니.”
“아이그 이렇게 고마울데가. 하지만 아저씨도 피곤해뵈는데.”
“괜찮습니다. 앉으세요.”
동그란 손잡이에 매어달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이 전철은 어느새 의정부 북부역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김가다가 선반에서 된장 상자를 내려들었다.
“전철역 밖에까지 들어다 드릴게요.”
“고마워요 아저씨.”
사람들이 모두 내릴 준비로 전철안은 어수선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김가다 앞에 비껴 서있던 아줌마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확 돌아서서 김가다를 죽일듯이 노려보는 게 아닌가. 김가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앗! 아줌마.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시죠?”
“뭐가 어째? 이거 허우대는 멀쩡해갖고 뭐 이래?”
“예? 뭐 뭐가 어쨌다는 겁니까?”
“철썩!”
“허걱! 아아아니 왜 남의 귀싸대길 올려 부치는겁니깟!”
“어딜 더듬엇!”
“뭐욧!? 내가 뭘 더듬었다고 그래욧!”
전철안 사람들이 돌차간에 터진 희한한 해프닝에 모두 목을 한자씩 빼고 김가다쪽으로 시선을 쏟아붓고 있었다. 처음엔 그렇게 안보였는데 몇마디 주고 받아보니 여간 딱장대가 아니었다.
“아아니 아줌마. 오른쪽 손엔 아줌마 된장, 왼손엔 내 가방을 들고 섰는데 내가 뭔 재주로 아줌말 더듬어욧!”
“야 이 자식아. 네가 지금 손으로 내 엉덩일 더듬었냐?”
“그, 그럼 뭘로 아줌마 엉뎅일 더듬었단 말이죠? 이 아줌마가 돌았네 진짜?”
“뭐야? 돌아? 네가 그 가운뎃 놈으로 내 엉뎅일 칵칵 찍어댔잖아!”
“허걱! 이 아줌마 진짜 사람잡겠네. 아니 어떤 골빈 남자가 예쁘게 생긴 아가씨들 다 놔두고 하필이면 도라무통 같은 얽빼기 아줌마 엉뎅일...하이고오 진짜!”
“철썩!”
“헉! 또 쳐?”
“이 자식아 내가 누군줄 알아? 30년 동안 동두천 588에서 포주로 잔뼈가 굵은 여자야. 척 하면 삼천리지. 내가 겉보기에 그렇게 어수룩해 뵈디? 그래서 물건 들어준답시고 전철까지 따라와서 내 엉뎅이에다 엉뚱한 짓을 해?”
“...!!!”
어쨌거나 수백개의 시선이 바늘처럼 온몸에 꽃히는 무고지민의 황당한 상황이라 김가다는 들고있던 된장통을 바닥에 팽개치듯 내려놓고 북부역 못 미쳐 의정부 역에서 내려버렸다. 귀뿌리를 만져보니 아직도 얼얼했고 정신은 그저 어리삥삥하기만 했다.
“나아참 재수없어도 이렇게 더럽게 재수없긴...아흐! 난 진짜 왜 인생살이를 이렇게 한심하게 살아야 하냐아! 이그...”
요즘 김가다는 아프가니스탄에 의료선교 나갔던 젊은이들이 아직도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염려가 되어 귀살쩍기가 이만저만이 아니고 잠을 자도 노루잠이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안될 지경이다. 게다가 두명이 참혹하게 살해당한 뒤 온 국민의 가슴에 진혼곡이 끊임없이 흐르는 상황에서도 일부 네티즌들이 기독교와 그들을 향해 내뱉는 모멸의 소리는 차라리 저주에 가깝다.
“유서쓰고 갔다매? 깨끗하게 죽어 그럼...”
“...”
김가다는 전철이 꼬리를 감춘 텅빈 홈에 퍼질러 앉아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엄청난 전쟁을 치르면서 얼마나 많은 세계의 젊은이들이 이 나라에 와서 목숨을 버렸는가. 그들의 부모들도 한국전쟁에 왜 네가 참여해야 하냐면서 눈물로 말렸을 것이었다. 120년전 성경책 한권을 들고 이 땅에 발을 디딘 토마스 선교사를 무참하게 돌로쳐서 죽인 민족,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와 목숨을 잃으면서도 이 민족을 위해 학교를 짓고 병원을 짓고 고아들을 돌보고...우리도 이젠 빚진자로서 절망의 땅에 희망을 주자고 사지로 뛰어들었는데 그들이 탈레반 테러범들에게 붙잡혀 생과 사의 처절한 고통을 혀를 깨물고 견디어내고 있는데, 한다는 소리들이 그렇다. 김가다는 15년전 무거운 짐을 들고가느라 고생스러워 하는 아줌마를 도와주느라고 비지땀을 뻘뻘 흘렸는데도 불구하고 되레 귀싸대기를 두! 대나 얻어 맞았던 악몽같은 기억을 되살리며 가슴이 쓰렸다.
“남에게 받은 것은 기억하지 않고 지금 내가 본의 아니게 좀 힘들다고 해서 함부로 주두라지를 놀리고 선한 의지를 가진 선한 사람의 따귀를 매몰차게 올려부치는 사람들, 훗날 반드시 입 벌리고 찾아올 무간지옥의 저주를 어찌 견디어 낼 것인가.”
김가다는 아프가니스탄에 잡혀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날 그때의 김가다처럼 가장 가까이서 이해해주고 고마워해야 할 사람에게 남우세로 따귀를 맞고 있다는 슬픈 생각으로 가슴이 저며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