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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동화작가 |
도도는 화단에 핀 해바라기 꽃이에요. 키가 무척 큰 데다 꽃잎은 빛나는 황금색을 띠지요. 씨앗과 꿀이 누구보다 많고요. 도도 주변에 사는 꽃들은 도도가 참 멋지다고 생각해요.
“우리랑 같이 놀자, 도도야!”
꽃들이 입을 모아 도도를 불렀어요.
도도는 키 작은 꽃들과 어울리기 싫었어요.
“너희처럼 작은 애들이랑 놀려면 고개를 잔뜩 숙여야 하잖니! 그럼 내 목이 얼마나 아플지 상상해 봐! 난 저기 높은 하늘에 뜬 해님하고 닮았어. 내 별명이 뭔지 아니? 태양의 꽃이야. 해님만이 나랑 잘 어울리는 친구라고!”
하얀 꽃이 고개를 까딱였어요.
“하긴 넌 우리보다 해님하고 훨씬 더 잘 어울려. 생김새가 해님이랑 닮은 데다 키까지 엄청나게 크니까.”
이번엔 노란 꽃이 부러운 듯 말했어요.
“별명이 참 멋지구나! 나처럼 작고 평범한 꽃은 평생 가질 수 없는 별명이야.”
조금 전 꽃망울을 터뜨린 아기 꽃이 말했어요.
“나도 얼른 자라 도도처럼 크고 멋진 꽃이 될래요. 그땐 꼭 나랑 놀아줘요!”
도도가 건방진 표정으로 아기 꽃을 흘겨보았어요.
“나처럼 크고 멋진 꽃이 되겠다고? 얘, 넌 국화꽃이야! 절대 나처럼 자라지 못한다고!”
아기 꽃은 잔뜩 풀이 죽었어요. 그 모양을 지켜보던 꽃들이 상냥하게 아기 꽃을 달래 주었어요. 아기 꽃은 금세 해맑은 모습을 되찾았어요. 꽃들과 어울려 노는 동안에 속상한 마음이 훌쩍 날아갔거든요.
꽃들은 더 이상 도도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더 이상 도도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말을 거는 친구가 하나도 없자 도도는 부쩍 심심해졌어요. 그 탓에 툭하면 해님을 찾았죠.
“해님, 나랑 놀아줘요!”
해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너랑 많이 놀아주고 싶지만 보살필 친구들이 너무 많단다. 산과 들에 핀 꽃들을 모두 돌봐야 하고, 나무들도 빠짐없이 찾아가야 해. 세상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날마다 내 손길을 기다리거든.”
“저는 해님과 꼭 닮았어요. 그러니 저를 가장 예뻐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해님은 도도의 시무룩한 얼굴을 따뜻이 어루만져 주었어요.
“모두에게 고루 사랑을 쏟는 게 내가 할 일이야. 세상엔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친구가 없단다.”
해님이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다니! 도도는 몹시 속이 상했어요. 화단에 무리지어 핀 꽃들이 하나같이 미웠지요. 도도는 심술이 가득 찬 얼굴로 꽃들을 흘겨보았어요.
꽃들은 저희끼리 재밌게 놀았어요.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의 흐름을 따라서 이리저리 춤을 추곤 했답니다. 가끔은 옆 친구를 간질이며 장난을 치기도 했지요. 벌들이 날아와 꿀을 부탁하면 꽃잎을 활짝 열어 꿀을 나눠 주었고요.
외로운 꽃은 도도뿐이었어요. 한동안 도도를 찾아왔던 벌, 나비도 이젠 날아오지 않았답니다. 꿀을 부탁할 때마다 도도가 바람의 힘을 빌려 몸을 흔들었거든요. 벌, 나비를 쫓으려고 말이에요. 흠칫 놀란 벌, 나비는 다시는 도도 근처에도 가지 않았어요. 도도가 아니어도 꿀을 나눠 주는 친구는 많으니까요.
세상 모두를 돌보느라 바빴던 해님은, 모처럼 구름 뒤에 누워 긴긴 잠을 잤어요. 한참 동안 해님이 보이지 않자 도도는 너무 쓸쓸했어요.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만 쳐다보며 해님이 나오길 기다렸죠. 해님을 기다리다 지친 도도는 결국 병이 나고 말았어요. 끙끙 앓는 도도를 바라보며 꽃들이 걱정을 했어요.
“도도가 아픈가 봐! 열이 많이 나는 듯해!”
샛노란 국화꽃이 비를 불렀어요.
“빗물아, 도도가 병이 났어. 얼른 내려와서 열 좀 식혀 줘!”
비가 투덜거렸어요.
“싫어! 도도가 툭하면 나한테 화내는 거 다들 봤지?”
도도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어요.
“이러다 도도가 쓰러지겠어! 제발 도도의 열을 내려 줘!”
꽃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비를 불렀어요. 꽃들의 간절한 부탁에 비의 마음이 흔들렸어요. 한 방울 두 방울, 빗물이 톡톡 도도를 적셨어요. 꽃들은 숨죽인 채 그 모양을 지켜봤죠. 도도는 힘없이 빗물에 몸을 맡겼어요. 비는 점점 물방울을 늘렸어요. 펄펄 끓던 열이 식자 도도는 차츰 생기를 되찾았죠.
“이제 좀 괜찮니?”
비가 시큰둥한 말투로 도도에게 물었어요.
“덕분에 많이 나았어. 고마워, 빗물아…….”
도도가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어요.
도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듣다니! 비는 이게 웬일인가 싶었어요. 누구도 도도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거든요. 비는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토도독 조록조록 노래를 불렀어요.
“도도가 나았어!”
꽃들은 신이 나서 물장난을 쳤어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 얼굴에 흠뻑 스민 빗물을 서로에게 뿌리며 놀았답니다. 도도는 흥에 겨운 꽃들이 부러웠어요. 그 틈에 끼지 못해 심술도 났지요.
“아, 시끄러! 너희들은 왜 그렇게 목청이 크니?”
도도가 소리치자 화단이 금세 조용해졌어요.
“미안. 지금부턴 조용히 놀게!”
분홍 꽃이 나지막이 사과했어요.
꽃들이 소리 낮춰 살금살금 물장난을 쳤어요. 도도가 슬그머니 꽃들을 살펴보았어요. 누구 하나 빠짐없이 행복해 보였어요.
도도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꽃들에게 물었어요.
“고개를 이렇게 계속 흔들면 어지럽지 않니?”
도도의 얼굴에 스몄던 물방울이 꽃들에게 튀었어요.
“시원하고 재밌기만 한걸!”
다들 입을 모아 외쳤어요.
도도가 다시 한 번 고개를 흔들어 꽃들에게 물을 뿌리며 말했어요.
“도대체 이게 뭐가 재미있니?”
꽃들이 도도를 바라보며 깔깔깔 웃었어요.
“고개를 옆으로 한 번, 위아래로도 한 번씩 흔들어 봐! 그럼 더 재미있어!”
보라색 꽃이 요리조리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어요.
“이렇게 말이니?”
도도가 힘차게 고개를 흔들며 물었어요.
“응! 그렇게 하니까 굉장히 재밌지?”
하얀 꽃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물었어요.
도도는 재미있다고 대답하지 못했어요.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물장난을 멈추긴 싫었답니다.
“이까짓 게 뭐가 재밌니, 응? 도대체 이게 뭐가 재미있어!”
고개를 까불까불 흔들며 도도가 외쳤어요.
친구들이 다시 한 번 까르르 웃었어요. 그제야 도도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알게 됐어요. 뿐만 아니에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기기도 했답니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덕분에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모두에게 고맙다고. 하지만 차마 그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어떡하면 좋을지 쭈뼛쭈뼛 망설일 때였어요.
“도도랑 노니까 너무 즐거워요!”
아기 꽃이 목을 쭉 빼고 외쳤어요.
“나랑 노는 게 정말 좋니?”
도도가 아기 꽃에게 묻자 꽃들이 다 함께 외쳤어요.
“물론이지!”
도도가 꼴깍 침을 삼키곤 수줍게 물었어요.
“그럼 얘들아, 나랑 친구가 되어 줄래?”
도도의 부탁에 아기 꽃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다른 꽃들도 아기 꽃과 똑같은 기분이었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화단 가득 함박웃음이 번졌어요. 그 순간 도도는 알게 됐어요. 예쁘지 않은 친구는 하나도 없다는 걸. 모두가 해님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