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순
허기진 가슴을 채우려는 듯이 생각을 비우며 인사동에 갔습니다.
보통 때는 잰걸음으로 다녔기에 오늘 만큼은 종종거리는 마음을 접어두고 싶어 마을버스가 지나가도 시계를 보지 않고 아주 천천히 갑니다.
스승님의 전시회에 들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나섰지만 가을 여자가 되어 빈 가슴을 채워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한테 전화를 할까 말까 했지만 용기를 내어 SOS를 보냈습니다. “인사동이다 오바” 화답이 꼭 오리라는 계산을 안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며 핸드폰에 귀를 기울입니다.
대낮에 술 취한 한량을 잡아가는 포도대장도,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하는 농악 꽹과리 소리도, 그 많은 볼거리도 가슴이 멍해져 있는 나의 마음을 잡아주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담담한 무표정으로 거닐던 거리는 어스름이 내려 앉아 나를 집으로 내쫓고 있었습니다.
숭숭 뚫린 구멍은 메우지 못하고 왔지만 길거리에서 산 물건들을 거실에 펼쳐 놓고 쳐다봅니다. 감각이 풍부한 사람들이 조각한 장미목나무 젓가락들, 파스텔 진한 톤으로 단장한 아로마 향 조각들, 수공제품인 인도의 목걸이가 나를 조금 위로 해 줍니다.
곤두서 버린 신경들이
서로 잡아당기며
한바탕 싸움질을 해 댄다
쑤서놓은 벌집마냥
시끄럽고 갈팡질팡하는
옴팡간 해골이다
세포들을 잠재우려고
부시시 일어나
인사동으로 향한다
해거름 어둠이
현란한 사물을 덮으며
다사로운 화평을 얹어준다
문화를 향유하며 다니는 여인들
질곡 된 생활을 풀어주는 거리의 악사들
깔깔대는 순백의 아이들
옥시글옥시글 세계의 풍물들
생동감 넘치는 모습들이
삶의 부스러기를
퍼 올리는 마력으로
신산스런 삶의 무게를 빼내고
노글노글하게 되돌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