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다는 그날 몇 년만에 회암사를 찾았다. 옛날에는 울창한 잣나무 숲을 끼고 흐르는 맑은 계곡물이 하도 깨끗해서 손으로 그냥 떠먹어도 그렇게 시원하고 맛이 좋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잣나무 숲을 뺑 둘러 철조망을 쳐 놓았고 옛 회암사 절터를 복원한답시고 파헤쳐 놓은 돌유물들이 여기저기 나딩구는 것이 을씨년스럽기조차 했다.
옛날에는 초등학교 소풍장소로서도 회암사는 단연 첫 손가락 꼽히는 단골메뉴였다. 회암사는 김가다에게 있어서 유별난 곳이었다. 30년 전에는 동네처녀와 어디 함께 데이트를 한다는 것이 꿈도 못꿀 일이었다.
아무개집 누구하면 손바닥에 눈금보듯이 훤했던 시절이었고 들녘에서 농사일로 바쁜 동네사람들이 비지땀을 뻘뻘흘리고 있는데 버젓이 애인과 그 들녘 사이를 지나간다는 것은 가시밭길을 절쑥거리며 지나는 것과 별다름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몰래 밀애? 즐길 수 있는 곳으로는 회암사 계곡이 최고였다. 그 당시는 등산객도 거의 없었고 가끔씩 나무하러 올라온 나무꾼이 잡목 숲속에서 얼씬거렸을뿐 물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만 음악처럼 속삭이던 곳이었다. 김가다는 아내와 함께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나누어 먹던 바위에 앉아 동두천 시장에서 제일 맛있기로 소문난 집에서 사온 김밥 도시락을 풀어놓았다. 그 때였다. 허릿춤에 차고 있는 핸드폰에서 새벽닭이 울어 제끼고 있었다. 그는 의당 마누라에게서 온 전화이겠거니 생각하며 뚜껑을 열었다.
“예? 엉, 철호구나. 뭐? 영철이가 죽었다구? 그, 그래 고려대학 부설병원 영안실에? 아 알았어, 갈게.”
김가다는 요즘 왜 이렇게 수십년 된 친구들 소식이 자주 들려오는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김가다에게는 괜찮은 친구가 꽤 여럿 있긴 했었다. 물론 어중이 떠중이 다 주워모으면 친구가 수백명도 넘겠지만 그 중에서 딱이 친구라고 손가락 꼽을만한 친구는 몇 안되었다.
왜냐하면 철딱서니 없던 청년시절에 친했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싸움꾼이었고 술꾼이었고 오입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20여년 전만해도 김가다는 그들의 행방을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왜냐하면 형편이 꼴이 아니었던 김가다가 일찌감치 성공한 친구들을 찾아보아서 술도 얻어마실뿐 아니라 뭐 좀 덕 볼일이 없나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있었다. 옛 친구들이 오히려 김가다를 찾아다녔다.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뒤로는 더더욱 어디 쑤셔박혀 있는지도 몰랐던 옛 친구들이 소식을 전해왔다. 그런데 그들은 거의! 하나같이 옛 모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었고 만나자마자 꺼내는 화두가 양주땅 어디 마땅한 부동산 한건 없냐며 김가다로 하여금 몸살을 앓게 했다.
“야, 양주땅 어디쯤 괜찮은 땅 좀 알아봐줘. 소문에는 뭐 양주시에서 끝발있는 공무뭔 하나만 꿰어차도 대박 터진다던데.”
“그런소리마 임마. 그리고 난 양주시에 아는 공무원 하나도 없다!”
“야 임마, 이 자식 이거 양주땅에 30년 살았다면서 영 잼병이네? 여태 뭐하구 살았냐. 일찌감치 시장쯤 팍팍 구워삶아 놓지 못하구... 쯔쯔쯔...”
“시장 팍팍 구워삶아 놓으면 뭐가 나오는데...?”
그 때 그들이 그런 말을 하며 시끌벅적 술잔을 돌리는 순간에도 김가다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쓰고 있는 소설 속에서 10살 연하의 남자에게 여주인공의 사랑 독백을 어떻게 표현하게 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현실은 김가다와 옛 친구들과의 문화의 벽을 두텁게 바꾸어놓고 있었다.
그들이 미랭시 다 되어가도록 주색잡기와 부동산 투기에 온갖 잡술을 다 동원해서 정신이 빠져 있을 때 김가다는 소설 쓰는 생각으로 머리에서 김이 마를 날이 없을 지경이었다. 옛 친구들은 여전히 김가다가 살고 있는 모습이 답답해 보였는지 몰라도 김가다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장돌뱅이 행색에다 수많은 영혼을 감동으로 흐느끼게 할 10권짜리 대하장편 소설을 완결짓는 일 외에는 세상에서 할 일이 없었다.
어쨌거나 김가다는 그날 저녁 영철이의 시신이 머물러 있다는 고대 부설병원 영안실을 향!해 전철을 탔다.
김가다는 지그시 눈을 감고 영철이란 친구와의 소름끼쳤던 옛 일을 한 대목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전날밤이었다. 어린아이 주먹만한 함박눈이 쾅쾅 쏟아지는 밤이었다. 그날 밤 김가다는 영철이와 함께 청량리 588 굴다리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골목안에 줄지어선 여자들이 지나가는 남자들을 목이 터져라 유혹하고 있었고 남자들은 개미귀신한테 홀린듯 골목안으로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때 영철이가 김가다의 손을 끌었다. 깜짝놀란 김가다가 왜 그러냐며 녀석을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다빡대는 그의 모습이 여간 수상쩍지 않았다.
“영철이는 아무 대답도 않고 무작정 김가다의 손목을 끌어잡아 당겼다. 그리고 골목안에서 어떤 나이먹은 포주 아줌마와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곧 포주 아줌마를 따라 골목안으로 사라졌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일을 끝낸 녀석이 포주 아줌마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하고 총천연색인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그녀를 연신 흘금거리며 따라나선 녀석의 모습이 여간 짬질찮아 보였다.
“야, 김가다. 너 이 아줌마 방에서 잠깐만 기다려.”
“왜, 임마. 나 집에 갈테야.”
“글쎄 한 30분만 기다려. 그럼 내 너 좋아하는 순대국 실컷 사줄게.”
그리고 녀석은 쏜살같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여자가 우악스럽게 김가다의 등을 떠 밀었다. 김가다가 엉겁결에 들어앉은 방에는 30촉짜리 전구가 한 개 천정에서 외롭게 늘어져 있었고 천정이랑 벽이 온통 아무렇게나 처덕처덕 발라져 있었다. 웃목에는 때에 절은 이불 한 채가 아무렇게나 개켜져 있었다. 재떨이엔 담배꽁초가 수북했고 우그러진 주전자와 물컵이 한 개 덩그랗게 방 한가운데 있었다. 그때 밖에서 자물쇠 잠그는 소리가 철커덕 들렸고 그밤 내내 김가다는 영철이놈을 원망하며 이빨을 갈았다. 옆방에서는 연신 낑낑대며 우당탕대는 남녀의 거친 숨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 이 새끼. 날 잡히고 오입질을 하다니. 나쁜 자식 잡히기만 해봐라. 그냥 아그...”
어슴프레 새벽이 광창에 밀려올때쯤 포주 아줌마가 자물쇠를 열어주었고 김가다가 폭발하듯 문밖으로 뛰쳐나왔지만 영철이놈은 이미 36계 줄행랑을 친 뒤였다. 나중에야 친구들 말을 전해듣고 알았지만 녀석은 그날밤 집에 가서 잠들어있는 제 엄마의 금반지를 몰래 빼다 포주에게 갖다 바쳤다고 했다. 그 길고도 참혹했던 긴긴밤의 기억을 되새기며 김가다는 머리를 와르르 털어버렸다. 김가다가 영안실에 들어섰을 때 그를 알아본 철호가 손을 내밀어 맞이했다. 문상객이 드문드문 한 것이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김가다가 물었다.
“왜 죽었어? 몇 달전에도 멀쩡했는데.”
“복상사야.”
“뭐, 뭐? 복상사? 하아니 이 자식 그 오입질하는 버릇 여태 못버렸어? 대체 어떤 여자랑 그짓하다가 복상사 했어?”
“노래방 도우미라나 뭐 어지간히 밝히는 유부녈 꼬신 모양인데, 나이 생각않고 여자 배 위에서 죽어라 헛심 쓰다가...그냥 여자 배 위에서 간거지 뭐.
“...!”
“별거중인 마누라랑 출가한 딸들에게 알렸는데도 아무도 안와. 동창생들끼리 장사 지내주기로 했다.”
“...”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속에서 김가다는 연신 하품을 내어 쏟으며 암담한 눈길로 창밖을 달려가는 도시의 불빛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참! 딱두허다 이놈아, 에그...나이 생각을 했어야지. 그 나이에 불측지변 복상사라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