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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하다는 것은
문예샘터 칼럼/김예태(문예샘터 자문위원)
  2013-12-20 09:42:22 입력

동피랑에 다녀왔다. 동피랑은 통영항 중앙시장 뒤쪽 언덕에 위치한 철거대상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골목길을 따라 그려진 그림들로 인해 관광지가 된 서민들의 삶터다.

골목 꼭대기에는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砲樓)가 있어서 2007년 통영시에서는 동포루의 복원을 위해 마을을 철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시민단체 ‘푸른통영21’이 이를 막았다. 그들은 공공미술의 기치를 걸고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었다. 많은 참가자들이 낡은 마을은 철거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부수기 위해 통영으로 모여들었고 그들은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형형색색의 붓질을 시작하였다.

집들은 하늘에 매달린 채 등과 옆구리와 앞가슴을 내어주었고 게딱지같던 작고 낡은 집의 벽과 허물어져가던 담벼락들은 화폭이 되어 기차가 달려가고 물고기가 헤엄치고 양귀비꽃이 피고 나비가 날았다. 엘리스도 어린왕자도 그곳에 있었다. 그림으로 마을이 새로 태어났다는 얘기가 입소문으로 퍼져나가 동피랑은 지금 시끌벅적한 마을로 변했다. 골목 어귀에는 천사의 날개를 그린 축대가 있는데 누구든 그 앞에 서면 천사가 된다. 천사의 날개 앞에는 천사가 된 자신의 모습을 찍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행렬이 제법 길다.

숨이 차고 목이 마르다 싶었을 때 매점 <몽마르다 언덕>이 보였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누구의 것이었을까? 사랑이 가득 담긴 이 아이디어는. 동피랑이라는 말은 동쪽에 있는 비랑(벼랑의 사투리)이라고 한다. 철거 소식을 접한 누군가가 벼랑 위에 놓인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며 그들을 벼랑에서 지키고 싶은 긍휼한 마음으로 내놓은 한 마디가 동피랑 마을을 구한 부싯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경기도 군포시에도 그림 마을이 있단다. 개발제한구역이었는데 올해 초 취락지역이 되었지만 마을사람들은 동요하지 않고 벽과 담장을 그림으로 채워갔단다. 60세 이하의 젊은 주민 7~8명이 ‘마을 가꾸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그림을 그리기 전 음악회를 열어 모금활동을 하고 작업비를 충당했단다. 군포시가 마을 가꾸기 사업비로 1,200만원을 지원했고 올 여름엔 벽화 그리기가 완성되어 다시 기념음악회를 열었단다. 마을사람들은 물론이요 마을을 지나는 사람들까지 납덕골 마을의 변화를 보고 즐기며 상쾌한 기분으로 살아간다니 참으로 아름다운 소식이다.

그런데 나는 이 소식이 씁쓸하다. 굳이 짚어 말한다면 그림 그리는 마을은 이제 그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이 싫어서가 아니라 동피랑을 지키기 위해서다. 희소가치 내지는 고유성을 지켜주고 싶은 거다. 납덕골 마을은 동피랑 마을의 성공을 창의적인 것으로 보고 그 고유성을 인정해야 했다. 덩달아 그림을 그려놓고 동피랑의 밥그릇을 뺏어오는 발상이 아닌 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군포시를 찾았어야 하고 군포시도 이런 점을 지적해서 바로잡아 주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남쪽에서 꽃 축제를 여니 북쪽에서도 꽃 축제를 연다는 광고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산 많고 물 좋은 양평은 청정지역의 아름다움은 지니지만 꽃은 남쪽 지역보다 늦게 핀다. 지척에 있으면서도 산수유 축제로 유서 깊은 이천보다도 늦게 핀다. 누가 구례의 산수유 축제를 마다하고 이천보다도 뒤늦게 피는 산수유를 기다려 양평으로 달려갈 것인가.

화가는 물론이요 많은 예술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적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꽃타령을 하고 있는 경기도의 한 군청을 예로 들어 민망하지만 부디 네가 한 것이 좋아 보이니 나도 해보자는 표절이 아닌, 보다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마을사업을 벌였으면 좋겠다. 관청은 전국의 대표적인 관광 내용을 숙지하고 이 부분을 심의하여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독창성 있는 관광지로 가꿔주기를 바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행복한 연말을 보내기 위해 백화점이나 호텔 대형빌딩들이 현란한 밤의 옷을 입고 반짝거린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여기저기서 따듯한 손들이 팔을 뻗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제는 불우한 이웃에게 푼돈을 건네는 행위가 아니라 그들의 자리를 지켜주고 그들이 다시는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도록 뿌리를 덮어주는 진정으로 따듯한 마음 한 가닥 가슴의 밑바닥에서 뽑아 올리는 크리스마스이기를 바란다.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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