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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1일 저녁 문예샘터 송년회를 느끼며 만주 유하현(柳河縣)에 백서농장을 개척한 것을 시작으로 민족의 자강과 광복을 위해 애쓴 김동삼 선생님과 대한통의부 그리고 국민대표회의와 국민대표회의를 계승해 결성된 수양동우회가 생각났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서는 서로군정서 대표로 참석한 김동삼 선생님을 국민대표회의 의장으로 추대하고 부의장이 되셨습니다. 만주 유하현(柳河縣)에서 시작된 독립운동이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서 민족의 자강과 광복을 위한 최대 비밀결사조직 수양동우회로 새롭게 변모되어 나타난 곳이 바로 의정부시 버들개 마을입니다.
박유선 사무국장님의 가야금 연주를 들을 때에는 만주 유하현(柳河縣)의 꿈을 키워 고구려의 시조모인 유화(柳花) 부인의 염원을 담은 축제 ‘동맹’을 생각해 의정부 버들개농요가 보존되도록 한 춘원 이광수 선생님이 떠올려졌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동서고금의 역사와 철학 등에 밝았던 춘원 이광수 선생님이 버들개농요가 보존되도록 한 그 심정, 성경 구약 시편 137편에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가야금 같은 악기)을 걸었나니… 여호아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수양동맹회’로 시작한 수양동우회는 도선대사님의 다물사상과 비보사상이 민족개조론과 인재육성관으로 영생 발전한 것입니다. 대부여의 흑룡 같은 인재 양성은 곧 대조선과 대고려의 땅과 문화를 찾겠다는 다물사상의 발로이며, 월초대사님과 운허대사님께서 광종에게 고려를 황제국으로 영생토록 한 탄문국사님의 운학사를 봉선사의 연원으로 삼은 것과 같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춘원 이광수 선생님의 비밀결사 수양동우회가 실천운동을 주로 하던 그 자리에 문예샘터의 활동 주무대가 된 것은 숙명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풍수는 기본조건이 전체적으로 완벽해야 명당으로 꼽는 전미(全美)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선대사님의 풍수철학은 명당을 만들어 가는 비보(裨補)사상입니다. 비보사상은 땅이 좋지 않으면 땅을 고쳐서 현실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도선대사님의 인재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포천시 백운산에 있는 흑룡사에서 이러한 뜻으로 후진을 양성하셨다고 합니다.
동국대학교의 설립자이신 홍월초 스님의 제자가 되기 전까지 운허대사님은 젊은 시절 단군국조님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스스로 ‘단총(檀叢)’이라는 호를 사용하며 대한통의부로 흡수된 한족회 기관지 <한족신보> 사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그 분의 고향 평안북도 정주에서 의정부 버들개 마을로 들어서는 어귀에 그 뜻을 연상시키는 단촌이 있고,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연상시키는 오산이 있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예샘터는 한민족의 통일과 번영의 길잡이라 생각됩니다.
더욱이 의정부 녹양동 문예샘터 전시관에서 양주시청 방향 건너편 산에는 살아서 나라를 팔아먹기도 하며 충일배족을 일삼는 모리배들이 많았던 시대에 죽어서도 독립운동을 도우셨다는 성종대왕의 숙의 남양홍씨 묘역이 있습니다. 일제의 감시로 연통할 수 없었던 독립운동가분들께서는 춘제와 추제 등의 제사 때 자연스럽게 숙의홍씨 묘역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송년회 공연을 보며 임경자 회장님을 비롯해 문예샘터를 이끌어 가는 많은 분들께서 여성인 것은 유화 부인과 성종대왕 숙의 남양홍씨 염원의 발현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2013년 문예샘터 송년회는 한 해를 보내는 행사가 아니라 2014년과 더 나아가 한민족의 통일을 향한 문화융성 시대의 길잡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