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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저자 |
촛불 4개가 천천히 타고 있었다. 촛불들은 주위를 환히 밝히고 서로 이야기를 하였다.
첫 번째 초가 말했다. “나는 믿음이야. 하지만 요새 나는 더 이상 필요한 존재가 아니야. 나를 신뢰하는 사람은 없어.” 결국 믿음의 촛불은 천천히 소멸되어 가다가 완전히 꺼지고야 말았다.
두 번째 초가 말했다. “나는 평화야. 하지만 요새 내가 꺼지지 않도록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어.” 결국 평화의 촛불도 천천히 빛을 잃어 가더니 결국 꺼지고야 말았다.
세 번째 초가 말했다. “나는 사랑이야. 나도 꺼지지 않도록 유지할 힘이 남아 있지 않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도 없고 나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사람들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조차 사랑하는 걸 까먹어.” 그리고 슬픈 눈물을 흘리며 서서히 약해지는 불빛을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꺼져 버리고 말았다.
그때 촛불 주인인 한 아이가 방 안에 들어 왔다. 4개의 촛불 중 3개가 꺼진 것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 “왜 타고 있지 않는 거야. 나하고 영원히 타기로 약속했잖아!” 그 때 네 번째 초가 다정스런 목소리로 아이에게 속삭였다. “울지마. 그리고 실망하지마. 나는 희망이란다. 내가 꺼지지 않는 한 나를 이용해 다른 초에 불을 붙일 수 있어. 한 번 해봐.”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웃으며 희망의 촛불로 다른 세 개의 초에 불을 붙였다. 희망의 촛불로 믿음, 평화, 사랑을 다시 불러 일으켜 4개의 촛불은 다시 환하게 방 안을 밝히기 시작했다.
1974년 마흔세살의 일본인 한 사람이 청계천 하류에 있는 개미마을에 들어갔다. 지금의 군자차량기지 부근에 땅을 파고 나무로 얼기설기 지붕을 엮어 지은 움막집 1,60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당시 청계천변에는 6만여명 정도가 빈민촌을 구성하며 살고 있었는데 그 곳은 그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곳이었다.
그는 그 곳의 한 집 거적문을 들치고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쪽방에 열댓살 소녀가 누워 있었다. 옆구리와 무릎에 드러난 하얀 뼈에는 파리떼가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병원에 찾아갈 엄두도 못 내고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다녔다. 그는 소녀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소녀는 움직이지 못하고 눈만 굴리고 쳐다볼 뿐이었다. 그는 소녀를 찾아가 간호했지만 두 달 후 숨졌고 그의 사진첩에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는 도쿄의 집을 팔아 청계천에 탁아소를 지었고 청계천 빈민들이 이주해 간 남양만에는 뉴질랜드산 젖소 600마리를 사다가 기증하기도 하였다. 그는 꾸준히 이름을 나타내지 않고 이들을 도와서 15년 동안 한국에 8억원이 넘는 돈을 부치기도 했다. 그는 결코 부자가 아니었다. 일본 야마나시현 산골에서 가정교회를 이끌고 있는 목사였고 기증 받은 헌옷 몇 벌이 전부인 무척 검소한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이다.
그는 그 동안 청계천 주변의 삶을 담은 500장 정도의 사진첩 ‘노무라 리포트’를 냈다. 처음 만난 그 소녀의 모습도 그 속에 살아 있었다. 노무라 목사는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소녀상’을 찾았다. 그리고 가지고 간 플루트를 꺼내 ‘봉선화’를 연주했다. 그는 이 노래가 일제강점기 때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 정부에게 사죄하라고 외치며 “일본이 역사의식이 없으면 일본은 희망이 없는 나라다”라고 했다.
그는 일본 우익들로부터 협박 전화와 협박 이메일로 시달리지만 당당히 그들에게 맞서고 있다. “일본에도 목소리를 내지 않을 뿐, 지난 역사에서 가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미안한 마음으로 사는 양심적인 사람이 더 많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노무라 목사는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으며 죽어서 한국에 뼈를 묻히기를 희망한다. 아는 이들은 그를 ‘청계천의 빈민 천사’로 부른다.
일본의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위해 계속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 그래서 계속 주변국들을 불편하게 하고 대결구도로 나가고 있다. 이제 일본과는 평화의 촛불도 꺼지고 믿음의 촛불도 꺼지고 사랑의 촛불도 꺼졌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노무라 목사 같은 이가 있는 한 희망의 촛불은 다시 믿음과 평화와 사랑의 촛불을 타오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답답하지만 계속 인내하고 일본 위정자들의 치졸성을 웃어 넘기자. 답답할 때는 웃음이 최고로 좋은 약이다. 헛웃음이라도 좋고 억지웃음이라도 좋다. 그것도 효과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