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정치판이 어수선하고 걷잡을 수 없을만큼 혼란스러울 때마다 김가다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는 한 사람이 불쑥불쑥 망막에 떠올려지곤 한다. 그는 30여년 전 김가다가 군대생활 할 때 내무반장직을 맡았던 박 하사였다.
김가다가 안동 36사에서 교육을 마치고 대전 병참학교 특수교육을 마친 뒤 배속된 곳은 당시만 해도 야간보초를 서던 중 졸았다 하면 북괴간첩이 귀신처럼 나타나 목을 잘라간다는, 대성산 숲속에 누에처럼 엎드려 있던 포병부대였다.
당시만 해도 일년 내내 휴가를 나오지 않으면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던 첩첩산골 속에서의 군대생활이었다. 여자란 가물에 콩나듯이 한번씩 대북방송을 하러 짚차를 타고 철책선으로 달려가는 여군이 전부였고 병사들은 그렇게 하얗게 손을 흔들며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야속한 여군들을 넋이 빠져 쳐다보고만 있었다.
김가다가 전출오기 훨씬 전부터 그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던 박 하사는 김가다가 제대할 때까지도 C포대 내무반장직을 악착같이 고수하고 있었다. 그의 신체적 특성은 얼굴에 크고 작은 마마자욱이 얽벅얽벅 심했던 얽빼기였고 안장코에다 그의 입술에서 버릇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었던 욕귀신이었는데 그 욕은 병사들에게 혐오감을 줄 때도 많았지만 때로는 웃음의 묘약 노릇도 톡톡히 했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좌우지간 장취불성이었고 누군가 이치에 맞지 않는 무슨 말을 내어 놓기만 하면 그는 예외 없이 입술을 이죽거리며 그 욕을 내 뱉었다. 그가 입만 벌렸다하면 쏟아뱉는 그 욕지거리는 이제 병사들의 귀에 못이 박혀버린 상태였다.
그는 훈련을 나갈 때나 작업을 시킬 때도 악발이로 통했고 고집과 심술이 남달리 심했다. 그는 틈만 생기면 취사반에 어슬렁거리며 나타나서 무슨 특식이라도 나오지 않았나 싶어 코를 벌름거리며 취사장 구석구석을 이 잡듯이 뒤지기도 했었다. 그래도 별 신통한 것이 없으면 그는 공연히 혀짜래기 목소리로 짜증을 부리며 취사병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일종계를 맡았던 고 일병은 사단에서 부식수령을 해오다가 다목리마을에서 광릉소주 한병을 빼놓지 않고 사다가 일종창고 비밀스런 곳에다 감추어 두었었다. 그리고 그가 나타나서 시비를 걸만하면 그 소주를 내어놓았는데 그럴 때면 박 하사의 입이 함지박만하게 찢어지곤 했다.
하지만 박 하사는 내무반원들이 포대장에게 기합을 받는 일이 생긴다거나 곤란한 입장에 쳐하기라도 하면 항상 자기가 앞장서서 책임을 혼자 떠맡기도 하는 의리의 사나이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취사반장이 갓 전출온 정 일병에게 냉장고에 가서 부식을 가져오라며 심부름을 시켰다. 그런데 냉장고에 간 정일병이 30분이 지나도 오지않자 취사반장이 냉장고를 향해 이빨을 갈며 달려갔다. 당시 김가다가 근무했던 부대 냉장고란 요즘 식당에서 사용하는 그런 대형 냉장고가 아니라 수피령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시원한 계곡 옆에 뚫린 천연동굴을 냉장고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한여름에도 그 안에 들어가면 와삭와삭 소름이 돋았었다. 널빤지로 문을 해 단 동굴문 안으로 들어가다 말고 취사반장은 그만 억 하는 비명을 지르고 용수철처럼 튕겨져 동굴 밖 계곡 물속으로 첨벙 나가 떨어졌다.
“으으악! 저 저게 사람이냐 귀신이냐”
그는 걸음아 날 살려라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행정반을 향해 내달렸다. 행정반 문이 깨어져라 들이닥친 그를 보고 포대장과 인사계가 화들짝 놀라서 눈이 화등장만 해졌다.
“뭐 뭐냐 왜 그랫!”
“포, 포대장님! 동굴 안에 귀, 귀신이...”
“뭐라구? 이 자식이 돌았나. 벌건 대낮에 무슨 귀신이얏!”
“그 글세 동굴에 가 보십쇼.”
포대장이 인사계와 함께 동굴을 향해 달려갔다. 용감하게 동굴 안으로 먼저 뛰어 들어갔던 인사계가 얼굴이 하얗게 되어 도망쳐 나오다가 그도 또한 계곡물에 첨벙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수상하게 여긴 포대장이 의아심을 잔뜩 품고 동굴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그도 아연실색 억 하는 비명소리를 내 지르고 말았다. 동굴 안에서 정 일병이 피가 뚝뚝 흐르는 붉은 고깃덩어리를 생으로 뜯어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얼굴에 피가 낭자했다. 정 일병은 동굴입구에서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포대장 일행을 향해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채로 무섭게 노려 보고 있었다. 모두들 동굴입구에 모여서서 사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을뿐 아무도 정 일병을 끌어낼 엄두도 못냈었다.
그때였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박 하사가 앞으로 쓰윽 나서더니
“귀신은 무슨 놈의 귀신!”
그는 성큼성큼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다짜고짜 주먹으로 정 일병의 얼굴을 쥐어박았다. 그제서야 녀석이 뜯어먹던 고깃덩어리를 박 하사에게 내밀며 히죽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히히...맛있다. 먹어봐.”
“일로나와 새꺄!”
그리고 박 하사는 우왁스레 정 일병의 손목을 잡아끌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 부대에서는 예전에도 그렇게 멀쩡하던 병사가 어느 순간 머리가 훼까닥 돌아버려 후방으로 후송간 예가 여러번 있었다고 인사계가 말했다.
“전쟁 때 아군이랑 중공군이 하도 많이 죽어서 그 원혼들이 떠돌아 다니다가 심약한 사람들에게 들어가면 저렇게 미쳐버리는거야.”
어쨌거나 욕지거리와 독종으로 소문난 박 하사이긴 했지만 부대 안에서 벌어지는 궂은 일은 혼자 도맡아 처리하는 해결사 역할도 톡톡히 해냈었다. 언젠가 그는 모처럼 제대 말년 고참 소대원 몇명을 데리고 부대 밖으로 몰래나가 논다니 여자들과 밤이 새도록 술상을 두드리며 놀 때도 그 입에서 욕지거리는 쉴새 없이 쏟아지곤 했다.
함께 어울려놀던 여자들도 듣기가 싫었던지 욕좀 그만하면 안되냐고 말하면 불에 기름을 쏟아부은듯 더욱 심하게 욕지거리를 쏟아 놓는 통에 화류계 바닥에서도 욕에는 한수도 뒤지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던 그녀들도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또 언젠가 대대장이 ATT훈련 출발 직전 부대원 전원을 연병장에 정렬시켜 놓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을 때였는데 어디선가 어김없이 누구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삐적삐적 새어 나왔다.
“쓰벌 제가 진급해서 연대장 될라고 우리보구 훈련 1등 하라는거지 뭐 나라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 최전방에서 고생한다고? 껌 씹는 소리허구 자빠졌네...”
그런데 그 소리를 앞에 서있던 포대장이 듣고 말았다. 나중에 포대장이 박 하사를 행정반으로 불러 놓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박 하삿! 대대장님이 훈시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얏. 대대장님이 듣기라도 했으면 어쩔뻔했나. 그럼 우리가 나라와 국민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이 최전방에서 훈련하고 고생하는 게 아닌가? 엉? 앞으로 주의해 알겠나?”
그때 포대장실을 나온 박 하사가 또 포대장실을 흘끔거리며 내뱉는 욕이 하품할 지경이었다.
“껑까구 있네. 제 밥그릇 챙길려고 군대 말뚝 박은거지 뭐 나라와 국민의 재산을 지키느라고 총들고 섰어? 쓰벌놈. 낫으루다 얼굴을 싹 깎어버릴까보다 그냥.”
“...”
2006년 여름 어느날 우연히 전철에서 만났던 옛 전우에 의하면 박 하사가 몇 년전 위암에 걸려 쓸쓸히 죽어갔다고 했다. 김가다는 요즘 정치판에서 돌아가는 꼴을 보고 만약 박 하사가 장가도 못간 채 지금껏 살아 있다면 그의 입에서 발칸포처럼 쏟아져 나올 욕이 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는 자기가 꼭 대통령이 되야 한다고? 그래서 살신성인의 각오로 출마했다고? 쵸오통수들 불고 자빠졌네...년놈들이.”
듣기에 좀 거북하긴 했으나 그것이 경상도 풍기땅 꼴머슴 출신이었던 박 하사가 호가호위에 눈이 먼 정치꾼들을 향해 흔하게 욕으로 짖어댔던, 차라리 피 맺힌 절규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