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먼저 먹겠다고 먹이를 놓고 싸우는데 도무지 염치가 있을까?”
<순자>에 나오는 글이다.
“세상에는 개돼지의 용기와 같은 것이 있고, 장사치와 도둑의 용기라는 것이 있으며, 소인의 용기, 군자의 용기 등 네 가지의 용기를 볼 수 있다. 저 먼저 먹겠다고 먹이를 놓고 싸우는데 도무지 염치가 있을까, 옳고 그름을 알까, 제 몸이 찢기는지 죽는지조차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숱한 떼전(한 무리를 이룬 사람들)의 힘조차 무서워하는 일 없이, 걸근거리며(음식이나 재물을 얻으려고 자꾸 치사하고 구차스럽게 굴며) 오직 먹는 것만 눈독을 들이는 것, 이것이 곧 개돼지의 용기이다.”
치열한 권력투쟁에 빠져 있는 정치권의 모습을 보니 ‘개돼지의 용기’가 떠오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정치보복과 정권 핵심인사들의 부정부패가 어떤 용기에서 나왔겠는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선 제 몸 찢기는 줄 모르고 오로지 걸근거리는 개돼지의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다음은 장사치와 도둑의 용기다. “재물을 놓고 싸우는데 이익을 위하여는 단 한 푼도 남에게 사양하는 법이 없으며, 과감하게 떨치고 일어나 사람을 집어삼킬 듯 무서운 탐욕을 부려 남을 울리고, 그저 걸근거리며 이익에만 눈독을 들이는 용기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재래시장 활성화’ 공약을 내세운다. 하지만 말 그대로 공약(空約)일 뿐이다. 원인은 재물을 놓고 싸우는데 이골이 난 재벌들 때문이다. 골목시장마저 집어삼킬 듯 과감하고 무서운 탐욕을 부리며 ‘슈퍼 갑질’을 저지르는 재벌 자제들의 횡포는 장사치의 용기가 아닐런지?
소인의 용기는 그나마 낫다. “죽음을 대수롭게 여기지 아니하고 난폭한 짓을 함부로 행하는 용기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분을 참지 못하고 타인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양아치나 주폭 등이 해당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군자의 용기다. “오직 도의에 살며 도의를 위하여는 권세에도 굽히지 아니하고 이익마저 돌아보는 일이 없으며, 세상 사람이 다 흔들려도 자신만은 끝내 마음 흔들림이 없으며,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아니함과 동시에 도의를 굳게 지켜 도의에 죽는 용기다.”
순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에도 ‘군자의 용기’가 없었으니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수천년이 지난 현대사회의 사회지도층에선 ‘군자의 용기’를 찾아보긴 힘들다. 우리 사회에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세월호와 의정부 화재현장의 의인들이 진정한 ‘군자의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윗물이 더러워도 아랫물이 맑은 사회’가 대한민국 사회다. 이 시대의 위정자와 사회지도층은 “대한민국의 용기는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