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하나회 뉴스를 들어야 하나?”
하나회는 3공화국 시절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 4년제 육사 1기임을 자부하던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한 사조직이다. 이들은 육사의 각 기수별로 주로 경상도 출신 소장파 장교들을 대상으로 3~4명씩 회원을 받아들여 세를 확장했다.
하나회는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등에 업고 군부 내에서 전횡을 저지른 한국 현대사의 문제아집단이다. 특히 하나회의 수장인 전두환 장군은 육사 11기의 선두주자였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기반으로 승승장구하며 유신 정권의 대표적 정치군인집단인 하나회를 키웠다. 전두환 장군의 비호 아래 하나회 멤버들은 육군의 주요 직책을 장악하며 요직을 대물림했다. 이들로 인해 당시 육군은 인사정책의 공정성이 실종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회가 승천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주군인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됐기 때문이다.
1979년 10.26 사태가 발발하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박 대통령 시해사건 합수부장으로 임명됐다. 수사권이 곧 권력이 됐다. 전두환 소장이 권력을 휘두르자 정승화 육참총장이 견제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하나회가 주도한 12.12 군사쿠데타로 체포돼 불명예 전역을 당하는 치욕을 맞보았다.
하나회의 권력욕은 군권장악에 그치지 않았다. 1961년 그들의 주군이 했던 방식대로 차근차근 대권장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980년이 되자 5.17 조치를 주도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다.
마침내 이들은 전두환 장군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는데 성공했다. 전두환의 5공 정권이 하나회였고, 하나회가 5공 정권이었다. 12.12 쿠데타 주역들인 11기를 비롯해 17기, 18기들은 청와대를 비롯한 정·관계 요직을 독식했다. 노태우 장군은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6공을 창출했다. 하나회의 세상은 이어졌다.
하지만 ‘권불십년, 화무는 십일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YS의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하나회 핵심인 김진영 육참총장이 하루 아침에 숙청됐고, 다른 하나회 멤버들도 군복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의 단죄도 받았다. 1995년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 전두환, 노태우 등 핵심 인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됐다.
세월이 흘렀다. 하나회 주군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큰 딸인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친의 후배들을 중용했다. 정권 요직을 3공과 유신정권 인물들이 장악했다.
올해 4월 850여만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재향군인회 회장에 조남풍 전 육군대장이 선출됐다. 조남풍 회장은 육사 18기 출신으로 하나회의 핵심 인물이다. 노태우 정권에서 국군 보안사령관을 지냈고, 육군 교육사령관과 1군 사령관으로 승승장구했었다.
조 회장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안보고문을 맡았다. 조 회장 체제의 재향군인회가 시끄럽다. 회장 선거 과정에서의 금권 매수 의혹과 더불어 노조가 신임 회장의 인사전횡과 비리의혹을 폭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진실여부를 떠나 하나회가 뉴스가 되는 것은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니다. 정치군인 출신 노병들은 역사 속에서 사라져 주는 것이 국가를 도와주는 일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