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다는 군대를 마치고 나서야 대학을 졸업했으므로 그때 이미 친구들은 생존경쟁에서 김가다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훨씬 앞서 내 달리고 있었다. 김가다는 그만 그것에 주눅이 들어 서울에서 어디 발 붙이고 살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두더지처럼 산골로 기어들어와 살았지만 시골에서 살면 살수록 도시는 김가다에게 영 가고 싶지 않은 먼 나라로 생각되었다.
김가다가 처음 양주땅을 밟은 것은 1974년 4월이었다. 온누리에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어오르던 한낮이었는데 김가다는 전기도 없는 조그만 토담집에 배낭을 풀었다. 행길을 옆구리에 끼고 거북이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그 집은 나무를 때어 방을 데우는 아궁이식 단칸방이었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아도 집이라곤 가물에 콩나듯 드믄드믄 한두채 보일뿐 주위가 온통 야산으로 뺑 둘러싸여 있는 아늑하고도 포근한 산골이었다. 당시에는 틈만 나면 지게를 지고 뒷산으로 올라가 잔솔가지를 치거나 빨간 갈비를 한 짐씩 져다 뒤곁에 쌓아놓아야 긴 겨울을 춥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전기가 없었던 탓에 날이 어둡기 전에 군불을 지피고 호야유리를 깨끗하게 닦아놓아야 했다. 그때 그 매케한 흙냄새로 가득했던 조그만 방에서 호야등을 켜놓고 홀로 원고를 쓰고 있을 때 파도처럼 밀려왔던 고독은 소름이 끼칠만큼 두렵기도 했었다.
어머니가 사주신 암퇘지 다섯마리는 일년만에 30마리로 불어났는데 그것이 일차 오일쇼크 때 된서리를 맞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망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그중 아홉마리를 붙들고 개구리랑 뱀도 잡아먹이고 남의 밭에 수북하게 자란 쇠비듬을 부지런히 뜯어먹이며 악전고투했던 보람이 있어서 그 아홉마리 돼지를 팔아서 양지바른 산자락 밑에 땅 칠백평을 산 것은 참으로 기적같은 일이었다. 지금은 옛날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만큼 마을이 도시화되고 말았지만 30년 전 그 산골마을에서의 추억은 두고두고 가슴에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그때 회암리 산골마을에 살 때의 추억어린 일들이 갖가지로 많았지만 그 중에도 참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한 토막 있었다.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모내기도 끝나고 고추모도 다 심고난 뒤라 농촌의 일손이 잠깐 한가로울 때였다. 그날 의처러운 동네청년들 대여섯명이 마음을 모아 고기가 많기로 소문이 난 박씨네 웅덩이를 푸기로 했다. 모두들 바지를 둥둥 걷어올리고 양동이로 웅덩이를 푸기 시작했다.
이윽고 웅덩이 바닥이 드러나자 부지런히 양동이에 고기를 주워담기 시작했다. 미꾸라지 중태 가재 참붕어 등 고기들이 바글바글 했다. 잡은 고기를 흐르는 봇물에 깨끗이 씻어 잘 손질한 뒤 미리 준비해온 가스버너 위에 양은솥을 올려놓고 매운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때 아무래도 고추장이 부족했던 모양, 명순이 오빠가 자기집 쪽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댔다.
“명순아! 명순아아! 명순아아!”
조금 뒤 그의 여동생 명순이가 대문 밖으로 살짝 모습을 드러내었다.
“야, 고추장이 많이 부족하다. 고추장 좀 더 갖고 오고 동동주 한 주전자 더 퍼갖꼬 와.”
“동동주는 안돼. 그건 엄마가 아버지 드릴려고 따로 감춰놓은건데.”
“잔소리 말고 엄마 몰래 한 주전자 퍼 갖고 와!”
명순이는 오빠의 고함소리에 기가 죽은 듯 대문 안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말술로 소문이 난 김가다가 녀석의 머리를 쿡 쥐어박으며 말했다.
“야! 그깐 동동주 한 주전자 갖고 누구 코에다 붙이냐. 주점집 가서 쏘주 한짝 들고 와!”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한소리씩 거들었다.
“야, 차라리 쏘주를 한짝 사갖고 와. 막걸리는 배가 불러서 안돼.”
“돈은? 돈은 누가 낼건데?”
그때 김가다가 크게 인심이나 쓰는 듯 나섰다.
“얌마! 내 이름대고 쏘주 한짝 갖고 와!”
“그래? 알았다. 김가다 앞으로 외상 긋고 쏘주 한짝 가져올게.”
명순이 오빠는 그렇게 대답하고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 주점집을 향해 내달렸다. 그가 삼거리쪽으로 사라지고 난 조금 뒤 명순이가 술 주전자와 고추장 그릇을 들고 웅덩이가로 다가왔다. 그녀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오빠는 어디갔어? 술 갖고 왔는데.”
김가다가 풋사과처럼 싱싱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얼굴에 미소를 하나 가득 지어보였다. 명순이의 하얀 브라우스와 하얀 스커트가 한낮의 태양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는 듯 했다.
“왜 요즘은 영어 배우러 안오니?”
“아버지가 못가게 해.”
“아버지가? 영어공부 하지 말래?”
“그게 아니고...”
솰솰 끓고 있는 매운탕에 고추장을 쏟아붓던 친구가 김가다를 흘끔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렇지. 어느 부모가 다 큰 처녀를 너같이 엉큼하게 생긴 놈한테 밤마다 혼자 보내겠냐 에이그...”
“...!”
명순이가 그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매운탕이 끓고 있는 솥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젠 국수를 넣어야지. 너무 끓으면 졸아서 짤텐데.”
“네 오빠가 와야지. 국수가 불어터지면 맛이 없잖냐.”
“고추장을 마저 쏟아부어야겠네. 아직도 색깔이 안나네.”
그러면서 그녀가 풀섶에 놓인 고추장 그릇을 집어든 순간 그녀의 몸이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더니 그만 웅덩이 속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물을 퍼내었던 웅덩이 속은 어느새 물이 가득차 있었다. 그녀가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그녀를 건져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남의 집 과년한 처녀를 함부로 만지기 꺼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사람이 빠져죽을만큼 깊은 웅덩이도 아니고 보통사람 허리쯤 차오른 웅덩이었다. 그녀가 물 밖으로 기어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자 또 쭈르르 미끄러져 다시 웅덩이에 풍덩 빠져 버리고 말았다. 소주를 사러 갔던 그녀의 오빠가 재빨리 웅덩이로 뛰어 들어가 동생을 끌어내었다. 순간 그 자리에 둘러앉았던 녀석들 모두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르고 말았다.
“아흐...저...저게.”
물에 젖어 찰싹 달라붙은 치마 속에서 하얀 허벅지가 투명하게 드러났고 코스모스 꽃잎이 수놓인 그녀의 팬티가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브라우스 속에서 두 개의 유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금새라도 브라우스를 뚫고 튀어나올 듯 탱탱한 그녀의 젖무덤이 훤하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닌가.
당황한 명순의 오빠가 재빨리 동생의 앞을 막아섰으나 상황은 이만저만 난처한 것이 아니었다. 이윽고 정신이 번쩍 든 그녀가 논틀밭틀 걸음아 날 살려라 집으로 내 달리고 있었다.
“햐...! 엄마 젖꼭지 말고는 생전 첨보는 여자의 젖꼭지네...”
누군가의 입에서 목구멍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꿀꺽!”
“...”
“젖뚜껑도 안하고 사는갑네. 명순이는...”
지금 그 웅덩이가 있던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명순이네 집은 아직도 그 밤나무 숲속에 낡은 스레트 지붕을 이고 곧 철거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 명순네 집에서 조그만 고개 너머에 살고 있던 처녀가 지금은 김가다의 아내가 되어있지만 하여간에 글로 쓰려면 장편소설 상하권쯤은 될만큼 추억이 깊이 어린 그 마을이 이제 아파트 숲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판이다.
어쨌거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역시 양주땅 사람들은 인심이 후하다는 느낌이다. 오죽 인심이 후하면 차 안에서 임신한 여자를 성추행한 공무원을 아직도 월급을 주며 먹여살리고 있으니 그 인심 후함을 어느 지방에 비할 수 있으랴.
“애거...애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