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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저자 |
1980년대 초반 청아하고 낭낭한 목소리로 혜성같이 등장한 가수 남궁옥분씨. 세월은 흘러 데뷔한지 30년이 훌쩍 넘어 그녀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한 신문에 그녀와의 인터뷰 내용이 한 면 가득 실려서 자세히 읽어보게 되었고 그녀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고교시절 친구 손에 이끌려 포크동아리 활동을 하다 참가한 ‘쉘부르 콘테스트’에서 우승해 ‘이종환 사단’의 일원이 되어 가수로 출발하게 되었다. 1979년 첫 앨범 ‘보고픈 내 친구’라는 음반을 내었으나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명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1981년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가 대히트를 하면서 성공적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이어서 ‘꿈을 먹는 젊은이’,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에헤라 친구야’로 인기를 누렸다. 1981년에 KBS 방송가요대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1982년에는 MBC 10대 가수상, KBS 가요대상 여자가수상, 1983년에도 KBS 가요대상 여자가수상을 받으며 탄탄한 인기를 누렸다.
방송출연과 광고섭외가 봇물처럼 밀려왔고 돈과 명예가 따라오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내면의 삶은 공허했고 노래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사명감이나 책임감도 점점 사라져갔다. 반짝이 드레스를 입고 등 떠밀려 무대에 설 때마다 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녀의 일탈은 시작되었고 무대보다는 윈드서핑장이나 볼링장을 찾는 횟수가 늘어났다.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땐 그녀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출연섭외는 끊겼고 인기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재회’라는 노래로 잠시 재기에 성공하는듯 했지만 성대결절 진단을 받고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최고의 자리에서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데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랑도 떠났고 빚보증과 사기만 그녀에게 남겨졌다.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녀는 돈 때문에 미사리 작은 카페에서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한 때 최고의 자리에 있던 그녀가 이런 작은 카페에서 노래하는 자신의 모습에 화도 났고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다. 그러나 돈을 벌려면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청이 들려왔다. “여기가 네 자리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신인가수의 마음으로 열심히 노래했다. 그랬더니 그제야 관객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녀는 가수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노래 ‘봉선화’도 발표했다. 누군가는 그 분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한 많은 삶을 위로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나락의 세월에 참 많이 울기도 하였지만 이젠 밀린 숙제를 다 끝낸 기분이다. 광복절을 맞아 콘서트 계획도 세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나한테 자랑스러운 삶이 훨씬 더 멋지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수많은 아픔을 통해 비로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임을 알게 된다. 성공이 아니라 의미임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 아픔과 어두움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닌 것이다. 고통과 어둠을 통해 자신의 의식레벨이 몇 단계 뛰어오르고 삶의 진리와 축복을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빛이 찬란히 빛나는 것은 어두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늦게 깨닫는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언제나 사랑과 희망은 존재한다. 눈을 들어 닫힌 문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다른 편 문을 바라보라. 반드시 열려 있는 문이 있을 것이다. 하하웃음행복센터에는 이런 삶의 고통 속에서 많은 상처를 입고 찾아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웃다 보면 그들도 깨닫는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고, 성공이 아니라 의미임을…. 그리고 웃다 보면 그 어두움이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위장된 축복의 자리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웃음은 희망의 최후의 무기인 것이다. 웃자. 웃자. 웃자.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