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 때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온 신유한의 <해유록>을 보면 “오사카에 서적이 많음은 실로 천하의 장관인데, 우리나라 여러 명현의 문집 중에서 왜인이 높이고 숭상하는 것은 <퇴계집>만 한 것이 없다. 그래서 곧 집집마다 외우고, 모든 선비가 필담으로 물을 때 반드시 <퇴계집>을 첫째로 삼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일본의 성리학은 조선의 학문을 숭상하고 배웠다. 특히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 퇴계 선생의 서적을 많이 도적질했다. 게다가 정유재란 당시 일본에 끌려간 강항 선생은 성리학자인 후지와라 세이카와 교류하며 일본 성리학에 대한 이해와 심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한마디로 일본 성리학의 스승은 우리 조선이었다.
에도 막부 시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중에는 하야시 라잔이 있다. 하야시 라잔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에도 막부의 제도와 의례를 정비해 군신 상하 질서를 절대화시킨 인물이다.
하야시가 지은 <삼덕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위로는 하늘이 있고, 아래로는 땅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곧 천지의 예를 나타낸다. 실상 인간은 이 천지의 예를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세계는 만사가 상하 관계 또는 전후 관계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진실을 순순히 인정하고 세계를 예의 마음으로 꽉 채운다면 군신 관계가 어지럽지 않고 그에 따라 마땅히 인간 사회 또한 평화롭게 안정될 것이다.”
하야시는 인간 사회의 상하 관계는 천지의 관계와 같으므로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이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의 영향으로 일본 성리학은 사회 안정과 질서 확립을 위한 통치 이념의 역할을 담당했다. 하야시의 주장대로라면 성리학을 제대로 가르쳐준 우리나라는 일본의 하늘이다. 우리를 천지의 예로 모셔야 양국 사이 또한 평화롭게 안정될 것이고, 일본의 분수에 걸맞는 일이 될 것이다.
얼마 전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국의 주권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라는 망언을 했다. 일본 방위상은 우리 헌법의 영토규정을 무시하고 아전인수격 해석으로 자위대의 한반도 북부 진입을 공식화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식민지 침략의 가해자였던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북한 진입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낸 도발행위는 반드시 응징 받아야 할 만행이다. 만약 우리 정부의 동의 없는 자위대의 북한 진입은 침략 행위이다.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자. 19세기 말 일제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텐진 조약을 빌미로 한반도에 군대를 출병시켜 청일전쟁을 일으켰고, 조선을 반식민지로 만들었다. 일본의 위정자들은 하야시 라잔이 주장한 ‘천지의 예’가 무엇인지, 평화로운 인간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