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고승우/미디어오늘 논설실장 |
이명박 당선인 쪽에서 내세운 ‘경제’에 대한 대책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 대책의 뼈대는 기업이 국가의 부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당선인의 정치노선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기업을 기쁘게 하는 아이디어들이다. 호주머니가 가벼운 서민쪽은 기업에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자연히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이 나라 경제가 비상하면서 행복을 가져다 줄 시기가 다가오는 것인가? 다수 유권자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선후보를 선택하면서 그의 ‘경제’는 모두를 기쁘게 하고 만족시킬 도깨비 방망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혹자는 이런 상황을 빗대어, 이 당선자가 경제 메시아로 군림한 것이라 한다.
경제가 과연 행복을 가져올 수 있을까? 역사에 그런 예가 있는가? 해답은 ‘아니다’이다. 그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세기 들어 모든 나라는 경제성장 정책으로 국민의 소득증대를 기본적인 목표로 추구해왔다. 그러면 소득증대가 사회적 안녕과 행복을 가져왔는가? 서구 사회의 경우 지난 50년간 사람들이 부유해졌고 평균 수명도 늘어나고 건강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미국 종합사회조사(GSS: General Social Survey)에서 1975년부터 1996년까지 국민의 행복 정도를 물은 결과 아래 표와 같이 큰 변화가 없었다.
일본은 1950년 이후 40여년 동안 소득이 6배가 늘었지만 행복지수에는 변화가 없었다. 유럽의 경우 1970년도부터 조사하고 있지만 덴마크와 이탈리아를 제외한 나라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제성장이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리처드 라야드는 서구에서 지난 50년 동안 수입이 몇배 늘었지만 행복은 거의 커지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신의 소득과 재산이 늘어난다 해도 자신보다 더 많은 소득과 재산을 가진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한 행복하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절되지 않는 상대적 박탈감을 지적한 것이다. 이 영국 학자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에게 도덕을 가르치고 어린이 상대 광고를 금지하며 정신건강에 대한 지출 증대, 소득세 증세, 부의 분배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일인당 국민소득이 천배 이상 올랐다. 과거와 현재의 행복감 비교조사에 대한 자료가 없지만, 서구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IMF 이후 10년 동안 이 나라는 양극화로 치달아 수출이 잘 되어도 그 과실이 중소기업이나 일반인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성장이 고용을 창출하지도 않는다.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 양극화의 비극 속에서 1인당 GDP가 1만5천달러 수준을 돌파했다.
학자들에 따르면, 1인당 GDP가 1만5천달러 수준까지 경제적 수익이 늘어나면서 행복감은 증대된다. 그러다 보니 행복추구를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경제적 신분상승욕구가 극에 달한다. 우리 사회에서 ‘부자 되세요’ 하는 말이 인사처럼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달 대선에서 ‘무능한 진보보다 부패한 보수’를 선택한 국민의식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의 획득의식이 얼마나 큰가를 입증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낙관적으로 살피기 어렵다. 지난 5년간 누가 집권했어도 경제를 통해 행복감을 다수 국민에게 선사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가정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당선인은 향후 5년 동안 경제를 일으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인수위는 주로 기업위주의 경제정책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하다. 경제적 파이가 커진다 해도 상대적 박탈감은 더 심해질 것이다. 당선인은 대선 내내 분배보다 생산쪽에 더 치중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양극화의 해소는 크게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5년 뒤가 더 걱정이 된다. 정치는 경제로 다 되지는 않는다. ‘경제 지표가 어때서 그러냐’라고 외치는 참여정부의 참담한 모습에서 배워야 한다. 정치는 역시 감동을 주는, 국민을 섬기는 정치여야 한다.
미디어오늘(www.mediatoday.co.kr)과 기사제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