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영화계를 강타한 영화 <암살>은 일제 강점기에 침략자들과 친일파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의열단을 모델로 삼아 공전의 히트를 쳤다.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는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비록 일제의 강력한 군사력에 무릎을 꿇었으나, 조국 독립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하나 뿐인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민족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독립운동사에는 의열단 의거에 앞서 일제 앞잡이 처단에 앞장 선 독립투사가 있으니 그가 바로 이재명 의사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나오는 글이다. 백범은 “그는 22~23세의 청년으로서 미우에 가득하게 분기를 띠고 들어섰다. 그는 자기는 어려서 하와이에 건너가 거기서 공부를 하던 중에 우리나라가 왜에게 빼앗긴다는 말을 듣고 두어 달 전에 환국했다는 말과, 제 목적은 이완용 이하의 매국적을 죽임에 있다하여 단도와 권총을 내어보였다”고 회고했다.
김구 선생의 눈에는 허열에 뜬 청년으로만 보였지만 독립 의지에 불탄 청년 이재명 의사는 1909년 12월22일 명동성당을 다녀오는 ‘을사5적’ 이완용을 칼로 찔렀다.
이재명 의사는 거사 전, 동지 몇 사람과 서울로 잠입해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인력거를 탄 이완용을 암살하기 위해 먼저 인력거꾼의 가슴을 찔러 제압한 후, 이완용의 허리를 찔렀다. 이 의사는 계속 이완용의 어깨 등을 수차례 칼로 찔러 복부와 어깨에 중상을 입혔다. 이재명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돼 이듬해 5월 사형을 선고 받고 9월30일 24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백년이 지났다. 이재명 의사를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지만 2015년 정치인들은 망국적인 분열과 갈등의 늪에 빠져 자신들이 ‘냄비 속의 개구리’가 된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순국선열과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집단의 배신의 정치는 언제나 끝날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