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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우/미디어오늘 논설실장 |
대통령직인수위가 언론사 간부진 등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언론인은 물론 언론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광고주, 산하 단체장 등 광범위한 대상을 조사토록 한 것은 21세기 민주사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지난 80년의 언론학살을 떠오르게 할 만큼 충격적이다.
인수위의 비정상적인 모습 속에서 28년전 정치군인들이 자행한 내란시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먼저 언론인 성향파악 등을 시도한 전문위원을 파견한 문화관광부는 80년 언론학살을 주도한 문화공보부의 후신이다. 당시 문화공보부는 쿠데타 세력의 하수인이 되어 언론학살의 실무를 담당했다. 문광부는 인수위가 추진하는 정부조직개편안에 따라 문화미디어부가 돼 콘텐츠와 신문, 방송 등의 미디어 정책권을 전부 장악케 된다. 이는 신군부의 하수인 역할을 하던 80년 당시의 강력한 부처로 원상복귀 되는 측면도 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80년 5월 신군부의 쿠데타에 앞장섰던 국보위의 위원이었다. 국보위는 1980년 8월 전국 언론인을 A, B, C급으로 나눠 문화공보부에 통보해 불법 해직시켜 취업 제한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 위원장은 지금껏 자신의 국보위 참가에 대해 별다른 사과 등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유력 여성총리 후보로 거론된다. 80년에도 다수의 국보위 출신들이 중용되어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인수위는 80년 언론인 학살 등의 진상을 규명한 14개 정부 과거사위원회를 몽땅 폐기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과거사 규명과 청산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표시한 것이다. 과거사위는 전 세계적으로 불행한 과거를 지닌 나라들에서 추진된 일로 우리나라만이 행하는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인수위는 유독 과거사위에 대해 손톱만큼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치 않는 태도만을 보이고 있다.
인수위는 언론인 등의 성향조사를 폭로한 기사가 나가자 펄쩍 뛰면서 결백을 주장했으나 하루 만에 의혹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수위는 지난 12일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는 문화관광부에서 인수위로 파견된 박모 전문위원의 개인적인 돌출행동이라서 교체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난 뒤 다른 1명의 전문위원도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고, 문제의 전문위원에 대한 교체도 없었던 일로 한다고 CBS 노컷뉴스, 아이뉴스24가 13일 보도했다. 마치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려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비친다.
인수위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지만 수구언론은 조용하다. 경향신문이 보도한 이 기사는 정치권력이 언론의 목조르기를 하겠다는 명백한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나라 언론이 정상이라면 난리가 났어야 한다. 인수위가 발칵 뒤집힐만큼 언론이 들고 일어났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수구언론과 대부분의 언론은 인수위의 해명만을 중계하고 있다. 인수위의 해명도 하루가 지나면서 바뀌고 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다.
수구언론의 인터넷 사이트는 13일 오전까지 간략한 관련기사를 ‘눈에 잘 안 보이게’ 실었다가 이 당선인이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 용납 안 된다. 인수위 ‘옥에 티’…그런 사고 가진 것 잘못”이라고 언급하자 ‘눈에 띄게’ 보도했다. 권력 쪽의 입맛에 맞게 보도하는 방식이다. 수구언론의 언론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태도는 28년전으로 되돌아가면 이상할 것이 없다.
이들 언론 사주들은 80년 국보위 등이 앞장선 언론인 학살에 적극 협조했다. 당시 신군부의 광주학살을 규탄하면서 저항한 동료 언론인들의 동향과 성향을 신군부 쪽에 밀고했다. 언론 장악을 기도한 신군부들이 시도한 언론인 해직 작업에 협조한 것은 기자들을 희생시키더라도 회사는 살아야겠다는 검은 양심 때문이었다.
수구언론은 지난 28년 동안 언론인 강제해직의 진상을 밝히지 않는다. 스스로 행한 범죄이지만 과거사위의 조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국제사회를 향해 언론자유를 외치는 쌩 쇼를 해왔다. 수구 언론이 과거사위 폐지에 앞장서는 깊은 이유는 자신의 치부를 가리는데 있다. 수구 언론이 인수위의 비정상적인 행태에 대한 보도에 시큰둥한 깊은 뜻은 앞서 살핀 역사적 범죄에 그 뿌리가 있다.
인수위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인수위나 당선인 쪽 일각에서 군사독재 시절의 향수를 느끼고 행동한다는 의혹을 씻어내야 한다.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겠다는 발상을 갖는 순간 그 권력은 이미 민주주의를 등지는 꼴이 된다. 과거사위를 몽땅 해체하겠다는 식의 막가파식 발상은 걷어내야 한다. 80년의 범죄행각을 덮어두거나 그 비슷한 것을 도입하려 한다면 그것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 될 것이다. 진정한 미래의 추구는 철저한 언론자유의 보장과 과거에 대한 진상규명과 화해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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