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을 때인 1952년 1월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 즉, ‘이승만 라인’을 기습적으로 대·내외에 공포했다.
물론 가장 놀란 나라는 일본이었다. 그 충격은 우방국도 마찬가지였다. 한 마디로 전 세계를 강타한 초메가톤급 뉴스였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태연히 ‘한·일 양국의 평화유지에 목적이 있다’고 명분을 밝혔다. 이 때부터 소위 이승만 라인은 ‘평화선’이라고 정해졌다. 평화선 설정 배경은 한·일 간의 어업상 격차가 심하고, 어업자원 및 대륙붕 자원의 보호가 시급하며, 세계 각국 영해의 확장 및 주권적 전관화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 설정한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을 통해 한반도 주변수역 50~100해리 범위로 그곳에 포함된 광물과 수산자원을 보존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 뜻은 독도를 라인 안쪽에 포함한다는 데 있었다.
당사국인 일본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정부는 평화선의 국내법적 근거를 위해 1953년 어업자원보호법을 제정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을 침범하는 일본 배는 모조리 나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외국선박의 불법어로 행위를 엄격히 단속했다. 당연히 단속 대상은 일본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일본선박 313척이 나포됐고 이 중 126척만 송환됐다. 나머지 185척은 우리가 압류했다.
일본은 넋을 잃고 우리 정부의 법 집행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평화선은 1965년 6월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사실상 폐기됐고, 독도는 우리 영토가 분명한데도 일본은 자기네 땅이라고 생억지를 부리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움을 외면한 진상들이 따로 없다.
최근 정치권은 이승만 국부론으로 한창 시끄러웠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이승만 라인으로 대표되는 당당한 대일 외교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한 전략적 사고가 그립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