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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저자 |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민족음악가 하면 “울밑에선 봉선화야”로 시작하는 노래를 작곡한 홍난파 선생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활동한 안익태 선생도 기억할 것이다. 그는 민족의 교향시라고 할 수 있는 ‘코리아 판타지’를 작곡하였고,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가 이 코리아 판타지 속에 흐르는 멜로디이다.
일부에서는 그가 기미가요를 피아노로 연주한 적이 있다하여 친일파로 몰아붙이기도 하지만 그가 공부한 곳이 일본이고 일본인의 후원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 그의 작곡과 지휘의 인생을 볼 때 결코 친일로만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애국가 저작권을 유족들이 대한민국에 헌납한 것을 봐도 일방적 친일 매도는 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세계적으로 민족음악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가 독일의 지배 하에 있을 때 체코에 태어난 스메타나일 것이다. 스메타나는 1824년 보헤미아의 리코미슐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 소유의 양조장을 경영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스메타나는 음악적 재질이 뛰어났다.
다섯 살 때 현악 4중주단에 참여했고 여섯 살에는 황제 명명일 축하연주회에서 피아노 독주를 할 만큼 음악적 재능을 선보였다. 그의 꿈은 모차르트나 리스트 같은 음악가가 되는 것이엇다. 이미 모차르트는 타계하였지만 리스트는 동시대 사람이어서 열여섯에 처음으로 직접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리스트의 현란한 연주 솜씨에 탄복한 스메타나는 “피아노 기교로는 리스트, 작곡으로는 모차르트처럼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어려운 형편에서 피아노 연주와 지휘, 악기 레슨을 하면서 그는 우상이었던 리스트에게 용기를 내서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당돌한 두 가지 부탁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그의 작품을 리스트에게 헌정할테니 받아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학교를 설립하는데 필요한 돈을 후원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성품이 후덕하고 어려운 음악가들을 많이 도와준 리스트였지만 두 번째 부탁은 거절하였고 첫 번째 부탁만 들어주었다. 그러나 리스트는 출판업자를 설득하여 무명의 신인 스메타나의 작품을 출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 일이 있고부터 스메타나와 리스트는 절친한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리스트는 스메타나를 초대하기도 하였고, 슈만이 발간하는 음악지 창간 25주년 기념행사에 함께 참석하기도 하였다. 또 리스트는 스메타나를 자신의 저택으로 데리고 가서 직접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기도 하였다. 대선배 리스트이지만 스메타나의 열정과 재능에 감복해서 특별한 애정을 베풀어 준 것이다. 리스트는 스메타나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사람은 진정한 체코인의 가슴을 지닌 작곡가이며 신의 은총을 받은 예술가이다.”
스메타나는 음악적으로 리스트에게 많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일자리를 찾아 스웨덴으로 갔던 스메타나는 오스트리아 제국이 나폴레옹 군대에게 패배하면서 체코에 대한 강압적 문화정책이 완화되자 지체 없이 조국으로 돌아와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이 때 작곡한 오페라 ‘보헤미아의 브란덴 부르크가’로 성공을 거두고, 두 번째 오페라 ‘팔려간 신부’를 발표하면서 그의 명성은 정점에 오르게 되었다. 이어서 여섯 편의 오페라를 더 발표하고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현악 4중주곡 ‘나의 생애에서’와 같은 대표적 작품도 탄생시키게 되었다. 그는 체코 음악의 전통적 요소들을 유럽 음악의 틀에 녹여내 체코만의 독특한 음악을 창조하는데 성공하였고 체코 음악이 나아갈 길을 열어 놓았다. 그래서 스메타나는 ‘체코 근대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매년 5월12일이면 프라하에서 ‘프라하의 봄’이라는 세계 음악제가 열린다. 바로 스메타나 서거일인 5월12일을 기념해서 열리는 것이다. 이 음악제는 반드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연주하며 시작된다. 체코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애국자, 민족음악가인 스메타나를 추모하며 체코인들의 애국가 ‘나의 조국’이 연주되는 것이다.
서양음악사에서 애국심을 중심으로 한 작곡가를 살펴볼 때 폴란드의 쇼팽과 핀란디아를 작곡한 시벨리우스도 민족음악가로 빼 놓을 수 없지만 스메타나만큼 열열한 애국자는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제2곡 몰다우(스메타나가 붙인 원곡 이름은 블타바)는 웬만한 음악 애호가면 다 좋아하는 곡일 것이다. 강의 발원에서부터 강줄기가 흘러가며 생명을 살려가는 그의 음악은 우리 삶에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스메타나만큼 애국적 민족주의 음악가를 배출하지 못했지만 애국자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독립운동가이며 사상가이었고 독립협회, 신민회, 흥사단 등을 통해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다.
그는 비록 음악으로 민족성을 일깨운 건 아니지만 가는 곳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웃음운동을 펴신 분으로 유명하다. “아이들은 방그레 어른들은 벙그레 노인들은 빙그레 웃어야 민족에 희망이 있다”고 피력하신 분이다. 그래서 웃음으로 민족성을 일깨우고 웃음으로 긍정과 희망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신 것이다.
누구나 위대한 음악작품으로 애국할 수는 없지만 웃음으로 애국할 수는 있다. 웃음이 밝은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촉매이며 희망의 등불이다. 웃음도 애국이다. 웃자! 웃자! 웃자!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