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김가다는 20년 동안 친구의 돌봄을 받고 살아오던 친구의 아내가 죽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김가다는 잠시 베란다 창문을 열고 망연한 눈길로 명멸하는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 보며 한참 동안 상념에 잠기어 있었다.
“결국 천국을 입 맞추었구나...”
그러면서 김가다는 만일 지난 날의 고교동창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모두 모인다면 새삼 감회가 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가다는 졸업은 영락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고교 2학년 1학기 까지는 광성고등학교 아이스하키부에서 학창생활을 했었다. 이북에 있었을 때는 감리교 계통의 꽤 유명한 명문 고등학교였지만 6.25전쟁 당시 남한으로 피란와서 서울역 앞 양동에 간신히 뿌리를 내렸는데 김가다는 그 학교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명문고교로 100년 전의 위상을 되찾았지만 당시 학교가 위치해 있던 서울역 앞 일대는 온통 창녀촌으로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동네였다. 수업중인 대낮에도 교실 창문으로 벌거벗고 낮걸이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잡히는 그런 학교였다.
한참 여드름이 멍게껍질처럼 우툴두툴 불거진 녀석들이 여자들을 보고 터질듯한 젊음을 얼마나 참아내기 힘들었겠는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하도 똥통학교, 깡패학교라고 소문이 났던 터라 김가다네 또래들은 사람들이 많이 욱삭거리는 행길을 걸을 때면 아예 교모를 벗어 가방 속에 쑤셔 넣고 다녔었다. 그때의 동창생들은 졸업 후에도 하나같이 술통에다 깡패였고 오입쟁이였고 사기꾼이었다. 온전한 놈이 한명도 없었다고 해도 옳았다.
정팔이란 친구는 그런 친구들 중의 하나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창덕여고에 다니는 하숙집 여주인의 딸을 오매불망 짝사랑 하며 쫓아다니다가 별 볼일 없이 끝나버린 녀석은 허구한 날 깡패놈들과 떼지어 몰려다니며 나쁜짓이란 나쁜짓은 빼어놓지 않고 저지르고 다녔었다.
정팔이는 군대에 가서도 여자를 그리워한 나머지 끝내는 정욕을 참지 못했다. 어느날 녀석은 선임하사 집 김장독을 파는 일로 사역을 나갔다가 부엌에서 점심상을 차리는 선임하사 부인을 부엌바닥에 자빠뜨려 놓고 욕심을 채울만큼 골통 중에 골통이었다. 어쨋거나 그 일 뒤로 선임하사 부인은 툭하면 남편을 졸라서 집안 힘든 일을 핑계 삼아 녀석을 밖으로 불러내곤 했다고 했다. 하여튼 정팔이는 맘에 드는 여자를 보고 어떻게든 욕심을 채우지 않으면 몇날 며칠이고 식음을 전폐하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녀석이 자랑삼아 하는 말로 자기가 상대한 여자가 150명쯤 된다고 했다.
그런 그가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아버지의 목재소를 이어받아 사업을 시작했는데 뭐 말해 뭐해. 일년도 못가서 쪽박을 깨고는 사채업자에게 쫓겨 온천지를 즐풍목우하며 싸돌아 다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아는 사람의 소개로 제주도에서 조금 떨어진 섬에 들어가 고기잡이배를 쫓아다니며 그물이나 기워주며 머슴처럼 숨어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고기잡이 배 선장의 집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녀석이 그 여자를 가만둘 리가 없었다. 훗날 동창회 모임에서 녀석이 털어놓은 말로는 어느날 밤 모두가 잠들어 파도소리만 철썩이는 한밤중에 녀석이 선장의 딸 방을 급습해서 일을 치르고 말았는데 마침 화장실을 가던 처녀의 아버지에게 들켜서 날이 훤히 밝아올 때까지 지게작대기로 떡이 되도록 맞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왕에 일이 그렇게 벌어진 바에야 선장은 별 수 없이 동네사람을 마당에 죄 불러 모아 놓고 구식 결혼식을 올려주고 말았다. 얼마 후 녀석은 장인어른의 도움으로 대충 빚 잔치도 했고 서울 중부시장에서 조그맣게 건어물 장사를 시작했는데 장사가 제법 잘 되어 돈도 심심찮게 벌었으나 그래도 제 버릇 남 못준다고 허구한 날 엽색행각이었다. 아들을 하나 낳아주기도 했지만 조강지처인 아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녀석의 아내는 그저 묵묵히 장사일에만 열심이었고 아무리 술주정을 하고 주먹질까지 해도 남편을 원망하거나 앙탈을 부리지 않았다.
그런 어느 해 여름, 시장 친목회원들과 부부동반해서 동해바다로 여름 휴가를 떠났는데 녀석이 튜브를 타고 꾸벅꾸벅 조는 사이 튜브가 녀석을 태우고 위험지역으로 벗어나고 있는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녀석은 자신의 몸이 물 속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튜브의 바람고다리로 바람이 거의 다 빠져 버린 상태였다. 녀석은 있는 힘을 다해 허우적대며 사람살리라고 소리쳤으나 아무도 도와주는 구원의 손길이 없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쯤 누군가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자신에게 달려오고 있다고 느낀 순간 그는 기어이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병실의 침대 위였었다.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병실을 찾은 김가다는 녀석의 모습이 너무도 달라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자신을 구해준 구조대원의 신원을 물었을 때 녀석은 충격으로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선생님을 구해주신 분은 바로 선생님의 부인이십니다.”
“...!”
“선생님 부인은 아직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 계십니다. 어려서부터 섬에서 자란 탓에 수영실력이 남달랐지만 워낙 오래 선생님을 버티고 있는 바람에 힘이 달려서 그만...”
순간 정팔이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제 아내는...살아날 수 있습니까?”
“목숨은 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식물인간이 될 가능이 높습니다.”
정팔이는 그제서야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울부짖으며 의사의 손을 붙들고 애원했다.
“선생님 제 아내를 살려만 주십시오, 비록 식물인간이 된다할지라도 살아만 주면 좋겠어요...흐흐흐흐.”
그런데 그의 아내는 식물인간이 된지 석달 만에야 정말 기적적으로 다시 의식을 찾았다. 하지만 정팔이의 아내는 하반신이 마비되어 스스로 대소변을 가릴 수도 없는 중증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그토록 주지육림에 빠져 쾌락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정팔이였지만 아내가 불치의 병에 걸린 이후로 그에게 일어난 영혼의 변화는 놀라웠다.
“아내를 돌보기 힘들고 짜증스럽지 않든? 칵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지 않았니?”
그때 정팔이는 강하게 고개를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아내는 자신을 죽이고 나서 나를 살렸지. 아내가 평생 내게 바라고 소원했던 것은 내가 교회에 열심히 나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었어. 그리고...내가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휠체어를 끌고 교회에 처음 발을 못 들여 놓았을 때 나를 쳐다보던 아내의 눈빛을 평생 잊을 수가 없을거야.”
“눈빛이 어땠는데?”
“눈물에 가려 흐릿해진 눈동자 속에서 아내의 눈빛은 천사처럼 행복하게 웃고 있었어. 평생 그토록 행복해 하는 아내의 눈빛을 본 적이 없었거든.”
“그랬구나...”
정팔이는 그 후 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면서 아내를 돌보는 일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아내의 휠체어는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는 가게에서 멀리 떨어진 화장실에 갈 때라도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함께 가서 화장실 문 앞에 휠체어를 세워놓고 일을 보고 나올 정도였다.
“내 생애 꼭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말야.”
“뭔데? 뭐 아내가 하루빨리 일어나서 건강하게 해 달라고?”
그는 김가다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타는듯한 어조로 말했다.
“제발 아내를 나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데려가 달라는 것이지. 만일 내가 먼저 아내 곁을 떠나면 아내를 돌봐줄 사람이 없잖아. 난 아내의 고통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받았거든.”
“...”
김가다는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부지런히 서울대병원 영안실로 향했다.
“그렇지. 진정한 행복은 물질이나 쾌락의 추구에 있는 게 아니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