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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저자 |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갓 돌아온 유능한 박사가 있었다. 그가 들어와 첫 번째로 자리를 잡은 직장은 어느 중소기업의 한 연구소였다. 그는 마땅치 않았다. 그 연구소는 박사학위 소지자도 많지 않았고 박사학위를 가진 이도 그 연구소 가까운 지방대학에서 학위를 딴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가장 학벌이 좋은 유일한 해외파 박사였다. 그는 이러한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자신보다 한 수 아래로 취급했다. 자신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인재라고 생각했고 연구소 다른 이들은 학벌이 낮은 촌뜨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해외파 박사는 연구소 뒤에 있는 작은 연못으로 나가서 낚시를 했다. 마침 그 곳에는 연구소 직원 두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는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두 사람은 모두 전문대 출신이라던데 나랑 이야기할만한 수준이 되겠어?” 해외파 박사는 그들에게 고개만 까딱거리고 아무 말도 않고 근처에서 낚싯대를 펼쳤다.
얼마 후 해외파 박사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을 목격했다. 한 쪽에서 낚시를 하던 연구소 직원이 낚싯대를 내려놓더니 터벅터벅 물 위를 걸어서 건너편에 있는 화장실로 가는 것이었다. 해외파 박사는 두 눈을 의심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여긴 연못인데… 물도 깊은 것 같은데… 물위를 걷다니… 혹시 내가 잘못 본 것 아닌가?” 해외파 박사는 어찌된 영문인지 몹시도 궁금했다. 그러나 우쭐한 자존심 때문에 물어볼 수 없었다.
그런데 또 다시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낚시를 하던 다른 사람도 낚싯대를 내려놓더니 물 위를 조심조심 걸어서 화장실로 가는 것이 아닌가? 두 번이나 기적 같은 광경을 본 해외파 박사는 머리가 아찔해졌다. “말도 안 돼. 중원의 고수들. 요가의 대가들이 여기에 다 모인건가? 아님 마술사들이 여기에 다 모인건가?”
해외파 박사도 급히 소변이 보고 싶어졌다. 이 연못은 길이가 길어 돌아서 화장실까지 가려면 너무 멀었다. 그는 물 건너는 비법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 속으로 가며 이렇게 생각했다. “전문대 나온 사람도 건너는데 해외파 박사인 내가 못 건너겠어. 나도 한 번 해보는 거야.”
연못 속에 발을 집어넣자마자 그는 깊은 연못 속으로 빠져 들었다. 직원들이 황급히 화장실에서 나와 해외파 박사를 구했다. “아니 어쩌시려고 연못에 들어가셨어요? 이 연못은 깊은 곳이 사람 한 길 정도 돼요.” 그러자 해외파 박사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두 분이 건너가시기에 나도 건너가려고 들어왔죠. 그런데 두 분은 안 빠지고 왜 저만 물에 빠졌죠?”
그들은 어처구니 없는 이 말에 당황한 듯 할 말을 잊고 한참 있다가 설명을 해주었다. “이 연못에는 원래 징검다리가 있지요. 그런데 요새 며칠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 다리가 보이지 않게 되었지요. 우리는 늘 다니던 곳이니 징검다리가 어디 있는지 알고 밟고 쉽게 건널 수 있지만 박사님은 아무 상황도 모르면서 왜 묻지도 않고 이런 황당한 일을 저질렀어요?”
해외파 박사는 크게 반성을 했다. 학벌이 좋다고 무엇이든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내가 배워야 할 장점이 있음을 일깨우는 일화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며 겸손의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한다. 겸손을 모르는 사람은 어떤 분야에서든 자기가 남들보다 강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자신이 무지한 소치이며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삶을 망치게 할 수도 있다.
겸손한 사람이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배워서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바다가 모든 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가장 아래 있어 모든 물들을 다 받아들이기 때문이다”라고 겸손의 미덕을 이야기했다. 겸손은 사람이 세상을 깊이 알아가면서 보이는 반응으로 우리 삶을 더 높은 단계로 이끌어 의식레벨을 한 단계 점프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덕목인 것이다.
웃음강의를 듣는 사람들 중엔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못마땅하고 교만한 자세로 듣는 이들이 있다. “어디 한 번 웃겨보시지.” “뻔할 뻔자지. 웃으면 좋다는 이야기겠지.” “나같이 교양 있고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 웃는 게 가당키나 해?” “공자님도 말했어. 치자다소(癡者多笑)라고… 어리석고 못난 인간들이나 웃는 거야.” 물론 나중에는 나의 열정에 같이 녹아 “아! 그래도 여기엔 뭔가 얻을게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이도 있고 아니면 일찌감치 슬쩍 자리를 빠져나가는 이들도 있다.
우울감이 심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과 교만해서 안 웃는 이들은 얼굴에서 벌써 확 차이가 난다. 이런 교만이 가득한 이들은 성숙해질 수가 없다. 교만하면 손해를 보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웃음은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의 길을 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