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벌포 전투는 한반도의 운명을 건 나당전쟁 최후의 전투였다. 7세기 중엽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은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미 당나라는 한반도 전역을 복속시키려는 흑심을 가져 백제 지역에는 웅진도독부를, 고구려 땅에는 안동도호부를 설치했다. 아울러 신라와의 동맹관계를 깨고 신라마저 계림도독부라 칭하며 복속시키고자 했다.
신라의 선택은 단 한 가지, 당나라와의 일전을 통해 자주성을 회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작한 나당전쟁은 670년부터 676년까지 진행됐다. 당시 동아시아 정세상 신라가 세계 최강인 당군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바위에 계란치기에 비유될 정도로 무모한 전쟁이었지만, 신라는 당이 토번과의 전쟁으로 정예군을 파견할 수 없는 상황을 십분 이용해 화전양면책을 적절히 구사하다 마침내 675년 천성(泉城)과 매소성(買肖城)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육전에서 기선을 제압당한 당군은 해전에서 역전을 도모했고 676년 11월 금강 하구 기벌포에 함대를 파견해 신라의 측면을 노렸다. 기벌포는 백제의 수도인 부여 방어를 위한 전략요충지였다. 신라도 이 곳을 당에게 빼앗기면 전쟁에서 패배할 수도 있었기에 사력을 다해 전투에 임했다.
더 이상 물러갈 곳이 없다는 ‘필사즉생’의 전의를 불태운 신라 수군은 수십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통해 당나라 설인귀 함대를 격파했고, 마침내 신라는 당의 한반도 지배 야욕을 분쇄했다. 비록 평양과 원산에 이르는 불완전한 삼국통일을 성취했지만 신라의 대당전쟁 승리는 민족사에 길이 남을 쾌거이다.
최근 당군의 후예인 중국 어선들이 서해에서 남과 북을 오가며 위험한 불법조업을 저지르고 있다. 이들의 만행에 수년 간 우리 해경 여러 명이 희생당했고, 이제는 군이 나서 퇴거작전을 진행 중이다. 정부와 군은 1300여년 전 신라의 수군이 죽기를 각오로 서해를 지켰던 기벌포 전투를 교훈 삼아 중국 어선이 다시는 우리 영해를 넘보는 일이 없도록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