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고 해도 고려 말 최고의 충신은 포은 정몽주 선생이다. 정몽주는 온건파 신진사대부의 대부로서 정도전과 달리 조선 건국에 반대하며 고려 왕조를 끝까지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충신으로 추앙받는다.
포은이 고려를 대표하는 정치인과 학자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머니 이씨의 남다른 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머니 이씨는 어린 몽주가 아버지를 잃었을 때 크게 상심하여 애통해 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꾸짖었다.
“너는 어버이에 대한 효도만 알고 나라에 대한 충의를 모르는구나? 사람은 효도도 중요하지만 충의 또한 중요한 일이니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돼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도록 해라. 그 길이 아버지에 대한 효도가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에 정몽주는 어머니의 말을 새겨듣고 학업에 매진해 과거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는 관직에 진출한 후, 공민왕을 비롯한 여러 왕들의 총애를 받으며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 보급에 앞장섰다. 또한 개성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 이씨의 교육 덕분이라고 많은 이들이 칭송했다.
이 무렵, 이성계와 정도전이 고려 왕조를 폐하고 조선 건국을 획책하면서 포은을 포섭하려고 했다. 이를 눈치 챈 어머니 이씨는 아들을 불러 시조 한 수를 읊어준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까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죠히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포은은 어머니의 이 시조를 수없이 되새기며 이성계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고 고려를 지키려다 이방원이 보낸 자객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얼마 후, 고려는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됐지만 만고의 충신 정몽주의 이름은 현재까지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다.
요즘 여러 정치인들이 각종 의혹에 휩싸여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포은 선생과 같은 자녀는 아무나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