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현은 충북 영동 출신으로 양반가의 서얼이었다. 그는 시대 흐름을 일찍 깨달은 듯 일본어 공부에 매진해 친일 개화 관료의 길을 선택했다. 친일 관료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러일전쟁에서 일본군 위문사로 파견되는 등 일본의 승리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훈1등 서보대수장을 받을 정도로 인정 받았다.
1901년에 군부대신 임시 서리를 맡았고, 이듬해에는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교장 임시 서리가 됐다. 요즘으로 말하면 육사 교장 서리다. 현재 육사 교장은 중장급이 맡는다. 1903년에는 육군 법원장에 임명됐고, 1904년에는 대한제국 육군 부장이 됐다. 권중현에게 1905년은 그동안 친일 행각에 방점을 찍은 해였다. 그는 농상공부대신 자격으로 을사조약에 찬성, 을사오적이 된다.
항일투쟁 세력들이 그를 가만히 둘 순 없었다. 1907년 나철의 을사오적 암살단과 강원상의 암살 시도에 불행히도 목숨을 건졌다. 그는 군부대신으로 의병 진압 명령을 내리며 의병운동을 탄압했다. 일본 정부는 동족학살에 앞장 선 그를 기특히 여겨 1908년 훈1등 욱일대수장을 수여했다.
1910년 국권을 상실했다. 일본 정부는 그 공으로 훈1등 자작 작위를 수여했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과 조선사편수회 고문을 맡아 친일행각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반민족행위에도 불구하고 80세까지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결국 사후, 73년이 지난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권중현을 비롯한 이완용, 송병준, 고희경, 권태환, 송종헌, 이병길, 이재극, 조중응 등 친일 반민족 행위자 9명의 토지 25만4906㎡(공시지가 약 36억원)에 대해 국가 귀속을 결정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