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제국주의 침략에 나섰다. 미국은 일본을 노렸다. 일본의 에도 막부는 미국의 함포 외교에 굴복해 1854년 개항을 단행한다. 막부는 미국과 영사 재판권, 관세 특혜 등 불평등한 내용이 담긴 통상 조약을 체결했다.
개항으로 무역이 시작되면서 하급 무사들과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무역 품목을 살펴보면 수입품은 섬유 제품이, 수출품은 생사와 차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생사와 차가 생산하는 대로 모두 수출되자 일본에서는 심각한 부족 현상이 발생해 결국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또 수출의 급증과 금의 유출로 하급 무사와 서민들은 생활이 어려워지자 외세를 배격하자는 존왕 양이론을 펼쳤다.
게다가 서양과의 굴욕적인 개항에 대한 강한 불만감을 가진 무사계급이 에도 막부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조슈번과 사쓰마번을 중심으로 한 반(反)막부세력은 영국으로부터 신(新)무기를 수입해와 1867년 막부세력을 무너뜨렸다. 이른바 대정봉환이 이뤄졌다.
신(新)정부는 ‘천황친정’과 ‘개국화친’ 등의 정치 이념을 선언하며 정부조직을 정비하고 연호를 ‘메이지’로 결정했다. 수도 이름도 ‘에도’에서 ‘도쿄’로 바꾸며 국가 개조에 나섰다. 폐번치현과 사민 평등 정책, 징병 제도와 국민 교육을 실시하며 중앙집권화를 추진해 아시아 최초의 근대화 국가를 건설했다. 바로 ‘메이지 유신’의 성공이다. 이로써 일본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줄 아는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일본은 자신들이 서양세력에 당한 그 방식대로 조선 침략에 나섰고, 1876년 조선과 강화도 조약 체결에 성공했다. 34년 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메이지 유신의 최초 희생양은 바로 조선이다. 한일병합은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한 조선 위정자들의 어리석음이 낳은 수치스러운 결과다. 정치지도자가 똑똑해야 한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