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김가다는 소요산의 외진 숲길에 뻐쭈하게 불거져나온 벤치에 앉아 상념에 잠기어 있었다. 그때 아내에게서 걸려온 전화 속에서 아내의 목소리는 물먹은 듯 울먹이고 있었다.
“민 목사님이 그예 돌아가셨대요.”
“...”
순간 김가다는 원고지를 달려가던 펜을 잠시 멈추어 놓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어쩌지 못하고 가슴으로 울었다.
“너무 빨리 돌아가셨구나. 이번 주일엔 중창단을 데리고 가서 목사님이 평소 좋아 부르시던 곡을 불러 드리려 했는데...”
김가다가 1974년 여름 어느날, 처음으로 만나뵈었던 민 목사님은 독바위 교회에서 농어촌 목회를 열정적으로 일구어가고 있던 때였다. 당시 목사님은 아내가 다니던 학교의 교목이기도 하셨지만 복음의 불모지인 농촌에서 사랑방 교실을 시작해서 점차로 농촌 복음화의 초석을 닦아놓고 계셨다. 언젠가 민 목사님이 김가다의 집에 찾아오셔서 넌지시 물으셨다.
“김 선생님은(그때는 집사가 아니었다) 꿈이 있어? 있다면 무엇일까, 허구한날 술에 젖어 사는 삶이 너무 아깝지 않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의 남편인데 유달리 안쓰러워서...”
그때 김가다는 멋쩍게 웃으며 목사님의 물음에 대답했었다.
“대학시절엔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었는데...그마저 꿈이 사그라진지 오래 되었구요...글쎄요.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소설을 써보고 싶긴 합니다만...”
“소설을? 그것 참 멋진 꿈이군. 쓴다면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데?”
저녁노을이 빨갛게 내리깔리고 있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김가다는 목사님에게 쓰고 싶은 소설의 내용을 대충 들려 드렸었다.
그때 민 목사님이 무릎을 탁 치면서 자신감에 넘쳐 말했었다.
“훌륭한 소재이고 멋진 영감이야. 써, 쓰라구.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쓰기 시작해.”
목사님은 그렇게 흥분하시기까지 하며 김가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런 어느날 김가다는 아들이 한밤중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가 마주오는 택시와 충돌하는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아들은 무릎 아래의 뼈가 몇조각 부서질만큼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김가다는 그때부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 듯 혹독한 고난의 우겨싸임 속에서 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조그만 쪽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설을 쓰기 시작한 6개월만에 ‘불곰’ 1.2.3권을 출판하는 기염을 토해 내었다. 소설을 밤새워 다 읽어본 목사님이 김가다에게 또 새롭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시작하셨다.
“김 선생, 이 책은 반드시 4.5.6권이 더 쓰여져야해. 4.5.6권을 또 쓰지 않을텐가?”
소설쓰기가 정말 얼마나 영혼을 갉아먹는 일인가. 그때도 김가다는 목사님의 격려에 힘입어 다시 기도원에 들어가 기어이 4.5.6권을 써내고 말았다. 일년만에 여섯권의 장편소설을 써 내었던 것이다. 그러고도 여러권의 소설을 더 썼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KBS아침마당에도, 극동방송, CBS 새롭게 하소서에도 출연했을뿐 아니라 신문사나 잡지에도 끊임없이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런 어느날 민 목사님은 다시 김가다에게 어렵게 입을 여셨다.
“김 선생, 그 소설 말인데 아무래도 10권짜리로 거듭 태어나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민 목사님이 어느날 갑자기 교회에 불어닥친 분쟁의 폭풍 속에 휘말리기 시작했고 결국 민 목사님은 34년동안 자신의 혼과 정열을 몽땅 쏟아 부었던 교회를 등뒤로 하고 배신의 독배를 홀로 마시면서 쓸쓸히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4년동안 중국 옌지에서 선교활동을 마치고 돌아오신지 얼마 안된 어느날 목사님이 또 아내의 가게에 들르셨다. 식사를 하시면서 목사님은 또 새롭게 필리핀 선교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씀하셨을 때 아내는 조심스럽게 만류했었다. 민 목사님은 그즈음 이미 건강이 몹시 나빠져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목사님, 아무래도 필리핀 선교는 훗날로 미루시는게...”
하지만 민 목사님은 결국 필리핀에서 쓰러지고 마셨다. 진단 결과 목사님은 위암 말기로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 수술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급거 귀국해서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던 어느날 김가다는 목사님이 누워계시는 병실을 찾아가서 목사님의 손을 꼭 쥐고 말씀 드렸다.
“목사님, 드디어 소설이 10권짜리로 거듭 태어 났습니다. 며칠전 탈고 했어요.”
김가다의 말을 다 듣고난 민 목사님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시며 매우 만족해 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몰랐다.
“수고했어. 하나님이 많이 기뻐하실거야, 수고했어. 정말 수고했어. 이제 정금처럼 다듬고 다듬어서 세상에 내어 놓아. 제목도 고치고 말이지.”
그런 며칠후 주일날 저녁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또 병실을 찾았을 때 민 목사님의 상태는 거의 절망적이었다. 아내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목사님의 손을 붙들었을 때 민 목사님이 혼신의 힘을 다해 아내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셨다. 그때 민 목사님이 아내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물으셨다.
“오늘 최재식 목사님의 설교 말씀 내용이 무엇이었어...”
그리고 며칠 뒤 졸사간에 민 목사님은 홀연히 천국을 입맞추고 만 것이었다.
“결국...돌아가시고 말았구나...”김가다는 밀려오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벤치에 앉은 채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민 목사님, 영감은 하나님이 주셨지만 미련할만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덕분에 10권의 대하 장편소설이 세상에 태어났지요. 저는 단지 손끝을 빌려드린 것 밖에 없습니다. 그 소설은 목사님이 세상의 많은 슬픈 영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두고 가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민 목사님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 세상에 없다. 목사님의 해맑은 웃음을 다시는 볼수없게 된 이 거리가 너무도 허전하여 김가다 부부는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비록 민 목사님을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목사님의 격려에 힘입어 탄생된 소설이 음지에서 소망없이 웅크리고 사는 음울한 영혼들에게 얼마나 많은 힘이 되고 위로가 될것인가. 문상을 다녀오는 길은 봄비로 촉촉이 젖어있었다. 문득 김가다는 책의 맨 처음장에 올라가야 할 한 줄의 문구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민정웅 목사님의 영전에 바칩니다. 김실, 이영휘.”
위대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그 나무의 뿌리가 얼마나 튼튼하여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그 숲의 우거짐이 어떠하고 열매가 어떠한가에 달려있다. 먼 훗날에 목사님을 그렇게 뼈가 마르도록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가서 무슨 말을 할까. 김가다는 자신이 그러한 무리 속에 두남두고 끼어들어 목사님에게 돌을 던지며 참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하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목사님, 생전에 우리 부부를 그토록 사랑해 주셔서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좋은 글을 써야겠지요.”
봄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김가다와 목사님이 살고 계셨던 아파트 광장을 소리없이 적시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아내가 아직도 떨리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했다.
“은혜 아빠. 목사님이 그토록 좋아하셨던 해물샤브샤브 집 앞을 이젠 마음놓고 지나칠 수 없을 것만 같아요. 그 해물샤브샤브를 너무도 맛있게 잡수시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려지면 가슴이 너무 아파서 어떡해 아빠...좀 더 자주 사드렸어야 했는데...좀 더 잘 해드려야 했었는데...지난 겨울에 내복이라도 한 벌 사 입혔어야 했는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