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유학생들은 1919년 2월8일 일본 수도 도쿄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터진 이른바 2.8 독립선언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의거다.
이 의거는 일본에 유학 중이던 도쿄 조선청년독립단이 주도했다. 대표는 최팔용이고, 춘원 이광수가 선언서와 결의문을 작성했다. 이밖에 윤창석·김도연·이종근·이광수·송계백·김철수·최근우·백관수·김상덕·서춘 등이 주요 인물이다. 이날 참석자는 600여명에 달했다고 하니 독립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표출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조선 유학생들은 제1차 세계대전 종료 후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에 자극 받아 한국의 독립을 요구한 것인데, 일제 경찰의 방해로 실패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한·일합방이 한국민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일본은 한국을 독립시킬 것과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일본에 저항할 것임을 선언했다.
의거는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소식에 자극 받은 국내 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을 계획해 행동에 옮긴다. 2.8 독립선언은 3.1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항일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다.
당시 일본 유학생들은 조선이 낳은 수재 중의 수재들이다. 그냥 시절과 타협해 자신의 입신영달을 꾀해도 될 법한데 이들은 조국의 독립을 외쳤다.
98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들이 원하던 조국의 독립은 이뤄졌으나 국토는 반토막으로 나눠져 남북 대치 상황이고, 남쪽도 치열한 이념전쟁에 휩싸여 대혼란에 빠져있다.
요즘은 적지(敵地) 한 가운데에서 독립을 요구하던 담대한 의기를 가진 의사(義士)들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이런 의기를 가진 정치인이 그리운 안타까운 정국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