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여름, 아일랜드를 여행했다. 더블린에서 자동차를 하나 세내어 타고 유럽의 가장 서쪽인 골웨이로 갔다. 거기서부터 황량하고 아름다운 코느마라 코스트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관광객의 무리가 북적대는 무덥고 소란스러운 대륙과는 달리 가도가도 초원과 구릉뿐인 풍경은 초가을날 같은 투명한 햇빛에 젖은 채 인적이 없었다. 크고 작은 늪과 호수들과 풀밭 사이사이로 나직하게 뻗은 돌담길이 끝간 데 없는데 가끔 외로운 양치기나 도보여행자를 마주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무작정 따라가다 보면 인적없는 바닷가의 절벽에서 문득 세상의 길이 끝나 있었다.
이름 없는 들꽃이 소복한 단애에 적막함이 사무쳤다. 가다가 시인 예이츠의 고장에 들러 그 유명한 ‘이니스프리의 섬’에 나룻배를 대어보았다.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작은섬에 잡초가 바람에 눕고 기슭에 찰싹이는 물소리가 한가로웠다. 아무도 없었다.
사공은 소리쳐 부를 때까지 밭에서 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슬리이고의 그리 볼품없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교회 묘지로 예이츠의 묘비를 보러 갔다. 과연 듣던대로 그 돌에 새겨 있으되, “말 탄 자여 지나가라”하였다. 죽은 자의 무덤 앞에 발을 멈춘 과객에게 시인은 어서 삶의 길로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떠났다. 북아일랜드의 눈물겹도록 처연한 바닷가에까지 올라갔다가 열흘만에 회정하여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왔다.
자동차를 빌렸던 회사를 찾아가 차를 돌려주고 나니 나무 한 그루 없이 뙤약볕만 내려쪼이는 마당 한가운데 여행가방 하나만이 내 앞에 휑하니 남았다. 가슴을 가득 채우고도 남던 그 초원과 파도 높은 바다와 늪 그리고 돌담길은 더디 가고 동그마니 남은 가방 하나, 그것이 나의 여행과 삶이 이른 곳 있었다. 어느 날엔가는 그 가방의 손잡이도 놓아버려야 할 것이다. 이것은 허무가 아니다. 가진 것이 없어야 멀리 갈 수 있음을 나는 안다.
나는 가끔 김장생의 아름다운 시조를 생각한다.
십 년을 경영하야 초려삼간 지었나니
반 칸은 청풍이요 반 칸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한번도 “一家를 이룬다”는 꿈을 꾸어본 적이 없고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여겨본 적도 없다. 그 집은 너무나 무겁고 삼엄하다. 그런집을 지어 누구를 가둘 것인가. 그러나 글을 쓸 때마다 나는 기이한 집짓기를 꿈 꾼다. 반 칸은 청풍이요 반 칸은 명월인 집, 가볍고 투명하여 떠남이 곧 휴식이고 안식이 곧 떠남인 집, 그런 집을 짓는 일이라면 십 년이 아니라 일생을 다 바치고 싶다.
김화영/<동두천문학> 2006·통권 90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