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 나라 효공(孝公)은 즉위 초기부터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새로운 국법을 제정키로 했다. 효공의 정책 추진 논의 과정에서 두지와 상앙, 두 재상이 맞서 싸웠다.
두지는 “기구일지라도 그 효용이 10배가 되는 것이 아니면 바꾸지 않는 법입니다. 법은 그 이익이 백배가 되는 것이 아니면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든지 종래의 방법을 취하고 고래의 예를 따르면 착오가 일어나지 않습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상앙은 “정치의 방법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국가에 이익이 된다면 빨리 바꾸어야 합니다”라며 신속한 개혁을 주장했다.
효공은 상앙의 의견을 들어 법은 제정했으나 반포는 연기했다. 백성들이 새로운 법을 수용할지 여부를 시험하기 위한 조치였다. 효공은 높은 나무를 도읍의 남문에 세웠는데, 나무에는 “이 나무를 북문에 옮겨 심는 자에게는 10금(金)을 상으로 준다”고 적혀 있었다.
백성 어느 누구도 이 말을 믿지 않자 효공은 “옮겨 심는 자에게는 50금(金)을 준다”고 하자 한 사나이가 이를 따랐고, 그에겐 약속대로 상금이 내렸다. 이제서야 백성들은 믿기 시작했다.
효공은 이에 자신감을 얻어 새로운 국법을 널리 반포했다. 하지만 새로운 법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태자가 새 국법을 위반하는 일까지 터졌다.
이 때 상앙이 나서 “백성들이 새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윗사람이 그것을 위반했기 때문입니다”라며 태자를 법에 의해 처벌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효공이 태자의 지위를 고려해 시종장과 태자의 교육을 담당했던 자를 처벌하자 백성들은 새 국법의 엄격함을 깨닫고 복종하기 시작했다. 이후 진 나라의 기강은 바로 세워졌고 미미한 범죄마저도 사라진 안전한 나라가 됐다.
이제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국법의 지엄함을 솔선수범해야 할 대선 후보들이 탈법을 저지르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