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事務官)은 ‘지방행정의 꽃’이라고 불리는 자리라고들 한다.
20대 청년시절 처음으로 공무원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간의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은현면사무소 산업계에 발령 받아 공무원으로서의 각오를 다졌던 생각, 남들보다 좀 다르게, 정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근무해야겠다는 다짐 등등. 1989년 12월 은현면사무소 발령 이후 올해로 어언 26년 7개월이 흘렀다.
어릴 때는 ‘나는 커서 손에 기름 묻히지 않고 책상에 앉아 일하는 곳으로 취직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상고(商高)를 나왔지만 공무원이 되었다.
1989년 4월 군대를 제대할 즈음 동네 이장님이 아버지께 ‘면사무소에서 면서기 시험이 있다’고 알려주어 아버지 권유로 우연찮게 시험을 보게 되었다. 일천한 실력으로 원서를 제출한 뒤 9급 공무원 시험서 1권을 다 보지도 못한 채 수원의 어느 중학교에서 시험을 봤는데, 운 좋게도 합격을 하였다.
군대를 제대하고는 상고(商高) 밖에 나오지 않아 마땅히 취직할 만한 곳도 없었고, 오직 시험 보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공무원 밖에 없어서 그냥 학교에서 공부했던 가닥으로 한 달여 공부하고는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지금 같으면 몇 년씩 공부해서 들어오는 공무원인데, 너무 쉽게 시험에 합격하여 공무원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해 12월 은현면사무소에 처음 발령을 받아 면장님이 늘 ‘김서기, 김서기’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예전엔 늘 면서기라고 하면 성에다 서기를 붙여 불렀다. 담당리에 나가면 이장님과 동네 분들도 항상 ‘김서기’라고 불렀다.
산업계 업무는 특작담당이었다. 농업용어도 잘 모르는 풋내기에게는 업무가 모두 낯설었다. 면장님 발령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선임들이 ‘도로가에 눈을 치워야 한다’면서 같이 가자고 하여 처음했던 일이 도로변 눈 치운 일이었다.
봄·가을이면 벼, 고추, 오이, 배추, 무 등을 얼마나 심었나 식부면적을 조사하여 군청에 보고하고 마을 청소, 모내기 독려, 밭에서 비닐 걷는 일 등에 매달렸다. 속으로는 ‘내가 이런 일 하려고 공무원 들어왔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농촌에서 나고 자라서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봄에 산불이 나서 물지게를 지고 산꼭대기까지 날랐던 일, 산불을 끄고 내려와 집에서 자고 있는데 바람이 불어 재발했다고 다시 출동한 일 등 이제는 그런 추억들이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그 때는 참 힘들었다. 산업계장님이 물지게를 같이 지고 나르니 요령을 피울 형편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 때는 면서기라고 하면 이장님과 동네 분들이 잘 대해주던 시절이라 동네에 출장을 나가 점심이나 막걸리를 얻어 먹어도 흉이 되지 않았다.
면서기 생활이 익숙해져 1년 반이 지나갈 즈음 군청 재무과로 발령 받아 근무하면서 8급으로 승진하여 다시 은현면, 내무과 근무 후 1996년 7급으로 승진했다. 문화관광사업소, 의회사무과, 총무과를 거쳐 행정자치부 3년 3개월 간 파견생활 후 2004년 6급으로 승진하여 문화재, 백석읍 부읍장, 도시디자인, 문화예술, 교육지원, 의회, 인사업무 등을 거쳐 26년 7개월여 만에 사무관이 되었다 .
지방행정연수원에서 6주간 전국 311명 예비사무관과의 연수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이 사람들이 다들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알게 됐고,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다고 생각하면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인생에 있어 큰 의미를 갖는다’는 말을 되새겨 보았다.
5급 승진 리더과정 교육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우리지역 발전을 위해 보탬이 되도록 열심히 근무하고, 이제 8년여 남은 기간을 모범적으로 생활하여 가족과 주위 분들에게 ‘공무원의 표상’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끝으로 공무원이 되게 해주시고 지금까지 보살펴 주시는 부모님께 사무관 발령장을 앞에 놓고 큰절을 드리니 ‘잘했다’는 말 한마디에 너무 고맙고 감사드린다. 아울러 사무관 교육기회를 주신 이성호 시장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