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화의 신호탄은 메이지 유신이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을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국가로 변모시켰고, 부국강병을 국시로 삼아 문명개화를 추진시켰다.
메이지 정부가 채택한 대일본 제국 헌법은 입헌 군주제에 바탕을 둔 근대 국가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으나 민심을 외면한 헌법에 불과했다. 천황은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으나 그 권력은 군부에 의해 행사됐다.
일본 군부는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군비 확장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됐다. 특히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 육군은 그 기세를 몰아 기존 내각을 붕괴시키고 조슈 번벌을 중심으로 가쓰라 내각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일본 국민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가쓰라 내각을 반대하는 다수의 국민들은 야당과 손잡고 ‘벌족 타도’와 ‘헌정 옹호’를 요구하며 호헌 운동을 일으켰다. 그 결과, 가쓰라 내각은 출범한지 50여일 만에 붕괴됐다.
역사는 이 사건을 ‘다이쇼 정변’이라고 기록했다. 일본은 다이쇼 정변 이후 정당 정치가 발전하며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민주주의의 발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은 1920년대 말 대공황을 맞아 경제 불황을 겪게 된다. 일본은 타개책으로 대외침략전쟁을 선택했다. 군국주의의 광풍은 아시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세웠고, 일본의 민주주의는 다시 어둠에 묻히게 됐다.
다이쇼 정변은 가쓰라 내각을 붕괴시켰지만 군국주의의 광풍을 막지는 못했다. 일본 민주주의의 실패는 아시아의 비극을 초래했다. 우리도 민주주의를 잘 지켜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