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봉과 조공은 동아시아의 오랜 외교 형태였다.
중국 주나라 왕실이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제후들과 맺은 데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주는 혈연관계를 기초로 정치적 연맹관계를 체결한 봉건제 국가였다. 주왕은 제후를 임명하는 책봉으로 그들의 영역 지배권을 인정했고, 제후들은 그 대가로 예물을 바쳐 조공의 예를 표했다.
한나라 때 이 제도는 중국 주변국가로 확대 시행됐다. 한 무제는 군사정벌을 통해 흉노와 고조선을 굴복시켜 동아시아의 패자로 우뚝 섰다. 무제는 유교적 통치이념과 화이관을 확립시키고자 주변국들에 대한 외교관계에서 책봉과 조공의 형식을 적용했다. 한나라는 직접 지배나 간섭을 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이 제도를 활용했고, 해당 국가는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위한 기회로 삼았다.
당나라가 들어서자 이에 반발하는 국가가 있었다. 바로 고구려다. 불행히도 고구려는 당의 침략에 끝내 멸망했지만 중국 중심의 외교질서를 거부한 당당한 자주국가였다. 동북아의 강자 고구려를 꺾은 당은 그 기세를 몰아 주변국에게 자국 중심의 외교관계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당 이후의 중국 왕조와 한 때 중원을 차지했던 북방민족의 왕조들은 책봉과 조공을 자국 중심의 국제질서의 틀로 삼아 안정적인 외교관계를 유지코자 했다. 한반도의 왕조들도 이에 편승해 왕조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중원의 선진문물 수용 기회로 삼았다. 하지만 이제 현대국가에선 봉건제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요즘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이 무역 보복을 일삼고 있다. 세계 양강으로 부상한 중국이 책봉과 조공이 그리운가보다. 구시대적 외교를 못잊어하는 것을 보니 중국이 선진국이 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듯 하다. 아쉽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