즘 다양한 분야에서 남성과 여성이 신분과 역할을 두고 격렬한 성담론에 빠져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쪽이 더 강한가를 가를 수는 없지만, 종종 ‘센 언니’로 표현하는 강한 여성의 등장으로 입을 다물 수 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신체적인 조건에서 힘이 우세한 남성을 이기거나, 강한 기를 가지고 있는 여성이 남자들도 힘겨워 하는 일을 뚝딱 해내버리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설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2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구비문학대계> 제작을 위한 채록 과정에서 양주시 남면 경신리 허영이 주민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는데, 거짓말을 한 총각의 부탁으로 작대기 하나로 호랑이를 막고 있는 처녀에 대한 내용이다.
옛날에 어느 마을에 큰 고개가 있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려면 넘어가야 하는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그 고개에서는 혼자 넘어가는 사람이 실종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길을 지나서 다른 마을로 가곤 했는데, 다른 길로 돌아서 가려면 삼십리 길을 더 돌아가야만 했다.
이쪽 마을에 혼자 사는 총각이 있었는데, 그날 고개 너머에 있는 동네에 꼭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그 고개만 넘어갔다 하면 사람이 없어지니, 총각도 잔뜩 겁을 먹고 있었지만 다른 길로 돌아가자니 삼십리 길이 아주 까마득하기만 했다.
“에잇! 죽으나 사나 어디 그 고개를 한 번 넘어가보자.” 총각은 당차게 마음을 먹고 고개로 들어갔다. 뭔가 나타나면 후려칠 튼튼한 작대기도 하나 마련하여 들고 열심히 고개를 건너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서 어쨌든 앞으로 계속 갈 수 밖에 없었다.
“이 고개만 넘으면 사람이 죽는다지만, 기왕 왔으니 어디 끝까지 가 보자.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거지.” 이러면서 고개를 넘어 가는데, 바위굴에서 호랑이가 갑자기 튀어 나오더니 총각을 잡아먹으려고 덤볐다. 지금까지 사라진 사람들은 모두 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힌 것이었다.
총각은 달려드는 호랑이의 아가리에 들고 있던 작대기를 힘껏 찔러 넣었다. 그러자 호랑이는 총각을 잡아먹지도 못하고 입에 박힌 작대기를 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사흘이 지나갔다. 총각은 배도 고프고 힘도 들었지만, 작대기를 놓는 순간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까봐 꼼짝도 하지 않으니 힘들어 죽을 노릇이었다.
그때 고개 너머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웬 젊은 처녀가 오고 있었다. 그러자 총각은 처녀에게 이 작대기를 넘겨주면 살아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각은 “똥만 싸고 오겠다. 잠시만 휘두르고 있으면 바로 오겠다”고 거짓말을 해 처녀에게 지팡이를 넘기고는 도망치고 말았다.
이후 총각은 하는 일마나 잘 풀리지 않아서 떠돌아다니면서 살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장가도 못간 채 건달생활을 하면서 겨우겨우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고개에 남겨둔 처녀가 생각났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고개를 찾아가자 그 처녀는 여전히 작대기를 잡고 서 있었다. 처녀는 백발이 되어 있었고, 호랑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작대기를 놓으면 호랑이에게 잡혀 먹는다는 공포는 처녀와 총각 모두에게 있었다. 그래서 호랑이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두 사람 다 작대기를 놓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어려움을 피해보려는 마음에 작대기를 넘긴 총각보다는 호랑이가 죽을 때까지 작대기를 놓지 않고 버틴 처녀가 더 강해 보인다. 바로 이 처녀가 설화 속의 ‘센 언니’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