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경은 명나라 상인 출신의 협상가다. 임진왜란 당시 명과 조선, 그리고 일본을 오가며 평화조약 체결에 나섰던 인물이다.
하지만 심유경은 국제 사기꾼이다. 그는 명 황제를 속이고 거짓 국서를 가지고 일본의 히데요시를 만나 양국 간의 관계 악화를 자초해 정유재란의 기폭제가 됐다. 후일에도 명과 일본 사이에서 평화협상을 주도하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으로 도망치다가 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문제는 조선의 태도다. 정유재란 발발의 기폭제가 된 역적을 예우하는 방법을 논하는 정부가 바로 조선이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30년 7월5일 기사에는 “체포·압송되는 심유격을 예우하는 방법에 관한 비변사의 건의를 재가하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상(선조)께서 ‘심유격(沈遊擊)이 나포돼 간다고 하는데, 그는 우리나라에 대해 근로(勤勞)가 없지 않은 사람이고 또한 일찍이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사람’이라며 “‘그가 국문(國門)을 지날 때에 모르는 체하고 접대하지 않으면 정리(情理)로 보아서도 미안한 일이니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 의계(議啓)할 것을 비변사에 이르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선조의 지시다. 국제 사기꾼이 명나라 역적으로 잡혀가는 상황에서도 ‘모르는 체하고 접대하지 않으면 미안한 일’이라고 지시를 한 왕이 있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비변사도 선조의 지시를 “성교(聖敎)와 같다”며 위로하겠다고 보고한다. 왕과 조정의 핵심부가 국익을 해친 역적마저 예우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니 왜적의 침략을 자초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선조는 백성보다는 상국(上國)의 사기꾼에 대한 예의가 더 중요했나 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