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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횃불 되지 않으려면
고승우/미디어오늘 논설실장
  2008-06-10 09:42:11 입력

미봉책, 꼼수는 안 된다. 미국산 쇠고기 고시 철회와 전면 재협상만이 국민적 저항을 잠재울 유일한 해법이다. 정부가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관보 게재 연기’나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중단 요청’ 카드를 꺼냈다면 또 다른 역풍을 부를 것이다.

대통령이 취임 100일 되는 날 미친 소 수입을 반대하는 시민사회에 일단 백기를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쇠고기 협상 후 한달 동안 이어진 시민사회의 항거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백기는 아직 절반만 올라간 꼴이다. 가슴 찡하게 만드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환골탈태는 대통령에게 달렸다

수만명의 시위대가 밤새 청와대로 연일 진출하고 장대비 속에서 시민 수천명이 평화시위를 벌인 사태는 이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정부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눈이 멀어 미국에는 저자세, 국민에게는 만용을 부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결국 관보 게재 연기와 미국에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에 대한 요청이 추가 협상인지 재협상인지 아직 애매하다.

이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느냐 여부는 그 자신에게 달렸다. 그는 합법적인 선출 절차를 거쳐 취임한 대통령이다. 그가 치명적인 오류를 범치 않고 국정을 수행하는 한 그의 임기는 보장된다. 그러나 지난 수일 동안 시민사회가 보여준 무서운 힘과 대통령에 대한 압박 강도를 고려한다면 그는 집권 100일을 청산하는 식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가 시민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마당이라 더욱 그러하다.

이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눈높이를 정확히 꿰뚫어야 한다. 오늘날 시민사회는 개발독재 시절과 다르다. 시민들에게 민주주의는 생활의 일부분이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정치권만의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가정과 직장, 심지어 거리시위에서도 민주주의를 원한다. 그래서 청와대로 진출하면서도 그들은 비폭력을 외친다. 촛불 축제, 시위에 가족과 애인이 자리를 같이 하는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일상생활이다.

이 대통령이 화를 자초한 것은 시민사회의 민주적 진화를 전혀 인식치 못한 탓이다. 시민사회의 변화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하고 헛소리 헛발질을 한 대표적인 곳이 바로 청와대다.  수구적 DNA를 청산하지 못한 청와대는 진화한 민주시민사회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해 일을 키웠다. 그 결과 디지털 시민사회와 아날로그 청와대가 벌이는 혁명적 드라마가 전개되고 있다.

청와대는 과거의 사고 틀 속에서 쇠고기 정국을 잠재우려다가 심야 대규모 시위를 자초했다. 시위대의 배후나 선동세력 색출에 열을 올리면서 물대포와 5공화국식 경찰 체포조를 배치했다. 시민들을 무차별 연행하는 과정에서 방패로 찍고, 군홧발로 얼굴을 짓이기는 일이 벌어졌다. 가해 경찰은 한명도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행된 시민 가운데 202명을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21명은 즉결심판에 넘겼다. 시민들을 겁줘서 시위 참가 욕구를 가라앉히려는 수법이다. 비폭력에는 폭력이 약이라는 식인가?

디지털 시민사회와 아날로그 청와대 격돌

광우병 쇠고기 수입으로 뿔난 민심을 달랜다고 지난 4월부터 정부쪽이 내놓았던 대책과 수법은 유치의 극치였다. 그것은 거짓말, 둘러대기, 떠넘기기로 압축된다. 대통령 지지는 집권 3개월 만에 20%대로 땅바닥을 기고 있다. 대통령은 불신과 조소의 대상이 됐다.

미친 소 정국이 어느 방향으로 치달을까? 시민이 분노하는 대상은 이제 미국산 쇠고기뿐 아니다. 대운하, 수돗물 민영화, 서민을 외면한 재벌 경제 살리기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시민사회의 요구와 청와대의 해법은 아직 거리가 너무 멀다. 감동을 주는 큰 해법이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촛불이 봉화불이 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미디어오늘(www.mediatoday.co.kr)과 기사제휴

 

2008-06-10 09:49:39 수정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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