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들렀던 종로5가 먹자골목 순대국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장맛비는 아닐텐데 밖에서는 소나기가 노드리듯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 가방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이 악을 바락바락 쓰며 울어대고 있었다.
“형님, 나 양만춘이요. 알아보겠소 내 목소리?”
“누구라구요? 양 누구라구요?”
“허어! 이것 참, 양 만춘! 양동 터주대감 양만춘!”
그제서야 김가다는 그 목소리를 알아 듣고는 가슴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야, 양만춘이라고? 이거 얼마 만에 듣는 목소리야? 그런데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형님이 어디 사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생각다 못해 형님하고 친했던 그 유명한 소설가한테 전활했지. 그랬더니 며칠전 형님 딸 결혼식에도 갔다왔다구 하데.”
“허어! 그랬구나. 어쨌거나 이것 참 몇년 만이지? 한 20년 다 되어가지 아마?”
“20년은 채 못되지만 하여튼 언젠가 형님이 살고 있던 시골에 한번 놀러 갔다온 이후로 처음이지 뭐. 그동안 빵에서 살다가 작년에 나왔어.”
“...”
“형님, 내 동생놈이말요. 내가 빵에서 나오자마자 양주땅에다 아파트 한채 사줄테니 거기가서 살라는군. 양주땅이 살기 괜찮소?”
순간 김가다는 난감한 표정이 되어 선뜻 대답하기가 몹시 망설여졌다.
“글세...뭐 살기좋은지 어떤지 몰라도...뭐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모르지 그거야. 나는 한 30년 살아왔으니 고향이나 다름없지만.”
“형님이 양주땅에 산다니까 내 동생놈이 펄쩍 뛰면서 좋아하는거야.”
“그건 왜?”
“아, 형님이 양주땅에 오래 살았으니까 그쪽 형편 빠삭할 거 아뇨.”
“뭐 빠삭하게 안다는 게 별거 있겠어?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다 똑같지.”
“내 동생이 양주에다 땅을 좀 사놓고 싶은 모양이야.”
“허어! 이 사람아. 이제와서 양주에다 땅을 사놓겠다니, 여기 땅값이 이젠 오를만큼 다 올랐어. 땅값이 좀 비싸야지.”
“형님, 땅이란 비싼데일수록 사 놓는 거야. 비싼 땅이 도로 싼 땅으로 떨어지는 예는 없거든. 그래서 더더욱 동생 놈이 양주에다 땅을 사놓겠다는 거지.”
“대체 몇 평이나 살려고 하는데 그래, 여기 땅값이 보통 평당 몇백만원에서 천만원 하는 땅도 있다는데?”
“천만원? 그럼 5천평이면 얼마지?”
“뭐라구? 평당 천만원씩 쳐서도 5천평이나? 그, 그럼 그게 얼마냐 데체?”
“한 오백억 되겠구먼 뭘. 내 동생이 말요, 전국에다 사놓은 노른자위 땅만 얼마나 되는가 하면 한 10만평은 넘을 거요. 그것도 임야 같은 싼 땅은 아예 치지도 않구 개발지역에 사놓은 금싸라기 땅이 그 정도면 알만하잖소.”
“자네 동생이 왠 돈이 그렇게 많아졌어. 옛날엔 날건달였잖어?”
“운이 닿으려니까 진짜 명동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돈많은 과부하날 덥석 물었지. 그 여자가 자궁암으로 죽었어. 그러니까 그 재산이 몽땅 동생놈 것이 되었지. 그때부터 동생놈이 부동산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뭐 말해 뭐허우. 돈을 갈퀴로 긁은 게 아니라 아예 포크레인으로 긁어모은거야.”
“...”
일단 양만춘과 전화를 끊고나서 김가다는 망연하게 빗줄기 속으로 시선을 던져 놓은 채로 한동안 미동도 않았다. 순대국이 절반이나 남았으나 입맛이 훽 달아나 버린 듯 숟가락을 내려놓고 순대국집을 나와버렸다.
양만춘. 그는 김가다가 서울역 앞 양동에 위치한 k중고등학교 다닐 때 만났다. 김가다가 고2였을 때 그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그도 광석이와 여포형제처럼 창녀의 몸에서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게 태어났다. 그는 정말 김가다가 세상에 태어나서 만나본 몇 안되는 꼴통 중의 꼴통이었다.
언젠가 그는 숙제를 안해왔다는 이유로 수학선생님에게 몽둥이로 궁뎅이가 퍼렇게 부어오르도록 매를 맞았는데 그의 어머니가 또 이만저만 왜장녀가 아니었다.
며칠 뒤 그녀는 똥장군을 지고 나타난 아저씨를 붙들고 바께쓰에 똥을 하나 가득 퍼 담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아들을 시켜 그 똥 바께쓰를 들고 교무실 문을 버럭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이타저타 말 한마디 없이 교무실 안에다 똥을 홱홱 쏟아부어 버렸다.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그런 일 후로 학교에서는 양만춘을 퇴학처분해 버렸는데 그런 어느 날부터 양만춘의 엄마가 퇴근시간에 꼭 맞추어 양만춘의 담임선생을 교문 밖에서 기다렸다가 그가 나타나면 찰싹 달라붙어 갖은 교태를 다 부리며 유혹의 손길을 뻗쳤지만 선생님은 바위처럼 꿈쩍도 않았다.
하지만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결국 선생님은 양만춘의 엄마와 하룻밤 운우의 정을 질탕하게 벌이고 말았다. 그런 며칠 후였다. 양만춘의 엄마가 교무실에 나타나자마자 첫대바기로 선생님의 따귀를 올려 부치면서 악을 바락바락 썼다.
“야, 이 자식아! 명색이 선생이 되어갖고 외상오입을 했으면 돈을 갖다줘야 할 것 아냐!”
황당해진 담임선생님이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도망쳤는데 그 길로 그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김가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김가다는 양만춘과 어울려 남대문 시장에서 막소주를 마신 뒤에는 으레 함께 닭장집에서 잠을 잤다.
닭장집이란 남대문 시장 한쪽 구석에 닭장처럼 송판으로 칸막이를 만들어 놓고 유대인을 감금했던 아우슈비치 수용소처럼 한 사람씩 들어가 잠만 자는데 3백원을 주고 들어가 자는 여관이었다.
어쨌거나 그는 그렇게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로 허구한날 사고를 치고 감옥을 내 집 드나들듯 했다. 어느해였던가, 그가 감옥에 있을 때 펜팔을 해오던 여자를 찾아갔는데 그때 그 여자는 성가대를 지휘하던 지휘자와 결혼을 해버린 사실을 알고는 수소문 끝에 답십리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있는 그녀의 집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그날 밤 휘발유를 한통 사다가 집 주위에 뿌리고는 불을 확 질러버렸다. 천만다행으로 그녀와 남편은 시골에 계시는 아버지 생일잔치에 다녀오느라고 집을 비운 것이 화를 모면한 결과였다. 그 후로도 그는 심사가 뒤틀리면 무작정 불을 지르고 다녔다. 그는 그 불쟁이 별명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아까운 삶을 감옥에서 다 썩혀버린 것이었다.
그런 양만춘이 김가다가 살고 있는 양주땅을 기웃거리고 있다니 김가다의 심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또 어느 곳에다 휘발유를 쏟아붓고 불을 지를지 알수 없는 일이었다. 이튿날 김가다는 양만춘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나 말이야, 양주땅에 안 살게 될거야. 자네가 양주땅에 이사 와도 날 보긴 힘들어.”
“그럼 어디로 간단 말이요?”
“나 아틀란타로 갈거야. 옛날부터 잘 알고 지내던 목사님이 함께 일하자구 해서.”
전화 속에서 양만춘이 깜짝 놀라는 투로 말했다.
“아니, 형님 교회 다녔어? 야, 대단하구만. 형님, 나도 빵에서 어느 장로님한테 전도받아서 하나님 믿은지 꽤 오래됐어. 야! 형님이 교횔 다니다니 이거 기적 중에 기적이구만.”
“...!”
김가다는 그만 자신이 이토록 소견이 좁은 홑벌인가 싶어 가슴이 꽉 메어져 왔다. 그리고 물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춘아...나, 사실은 아틀란타 갈거 아니야...그래 잘 생각했어. 양주땅으로 이사오렴. 아주 살기 좋은 곳이야. 만춘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