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조선의 유교 정치를 꽃피운 군주다. 그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통치체제의 기반을 닦은 아버지 태종과 달리 인재들을 모아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선의 국가정책을 세우는 데 힘을 쏟은 군주다.
특히 세종은 집현전을 학문과 문화 활동의 중심기구로 삼았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정인지, 설순, 김빈으로 하여금 사기를 읽게 해 임금의 고문에 대비케 했다.
세종 7년 11월29일 갑자 기사를 보면 “(세종은) 대제학 변계량에게 명해 사학(史學)을 읽을 만한 자를 뽑아 계문(啓聞)하라고 했다. 계량이 직집현전(直集賢殿) 정인지,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설순, 인동 현감(仁同縣監) 김빈을 천거하니, 임금이 즉시 빈에게 집현전 수찬(集賢殿修撰)을 제수해 3인으로 하여금 모든 사기(史記)를 나누어 읽게 하고, 임금의 고문(顧問)에 대비하게 했다”고 기록했다.
세종은 윤회에게 “내가 집현전의 선비들에게 모든 사기(史記)를 나누어 주어 읽게 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윤회는 “옳지 않습니다. 대체로 경학(經學)이 우선(優先)이고, 사학(史學)은 그 다음이 되는 것이니, 오로지 사학만을 닦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반대했다.
하지만 세종은 “내가 경연에서 <좌전(左傳)>, <사기(史記)>, <한서(漢書)>, <강목(綱目)>, <송감(宋鑑)>에 기록된 옛 일을 물으니, 다 모른다고 말했다. 만약 한 사람에게 읽게 한다면 고루 볼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선비들은 말로는 경학을 한다고 하나, 이치를 궁극히 밝히고 마음을 바르게(窮理正心) 한 인사(人士)가 있다는 것을 아직 듣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보수의 궤멸이라는 혹평도 나오고 있다. 한국당의 참패는 인재 양성을 게을리한 탓도 있다. 혁신은 ‘이치를 궁극히 밝히고 마음을 바르게 한 인사’를 발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자중지란에 빠진 현재의 한국당에 올 인재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 앞선다. 인재가 없는 정당은 미래가 없을 것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