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김가다는 서울로 장똘뱅이차 전철을 탔다. 항상 느끼는 바이긴 하지만 요즘처럼 즈런즈런 살맛나는 세월 만날 줄을 예전엔 전혀 예상도 못했다. 요즘 젊은이들한테 얘기하면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지만 좌우지간 초근목피로 외주둥이를 달래고 한 많은 보릿고개를 간신히 넘어오며 살았었다. 그렇게 혈혈단신에 굴왕신처럼 지지리도 못먹고 못입고 살았던 가난귀신은 어린시절에서 나이 50이 넘도록 김가다의 삶에서 찰거머리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긴 김가다처럼 전후세대는 다 그렇게 못먹고 못입고 살긴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운동장 같은 넓은 아파트(35평)에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모두모두 소원성취 이루며 이까지로 살 수 있으니 대체 김가다의 삶 중에서 이렇게 분에 넘치는 호경기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감사하기 짝이 없었다. 어저께도 김가다는 황학동 풍물시장을 샅샅이 뒤져서 옛날부터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카메라를 망원렌즈까지 포함해서 2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그 20만원은 김가다가 마누라 심부름차 광장시장을 누비며 원단값을 되알지게 깎고 깎아서 두달동안 푼푼히 모은 돈으로 산 것이었다. 그것도 요즘에는 기능이 우수한 디지털 카메라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바람에 유행에 떠 밀렸으니까 그정도 가격에 살 수 있지 2~3년전쯤만 해도 2백만원도 넘게 줘야 구입할 수 있는 카메라였다. 하지만 김가다가 뭐 내노라 하는 사진작가쯤이나 되어서 그 카메라를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것이 아니고 사진찍기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 카메라에 팔뚝만한 망원렌즈를 달고 방방곡곡을 들쑤시며 사진을 찍으려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도 멋있어 보인 탓이었다. 그 날 그 카메라를 사서 보물처럼 가슴에 안고 황학동에서 제일 먹고 싶었던 메추리구이를 아작아작 씹었던 맛이 아직도 입안에서 고소하게 맴돌고 있었다.
중고이긴 하지만 청바지 하나에 5천원이면 근사한 걸로 사입을 수 있고 멋지게 디자인된 버팔로 구두도 만오천원이면 그냥 몇 년을 신고다녀도 떨어지지도 않을 것 같다. 오천원이면 김치찌개, 된장찌개, 냉면, 고등어구이, 조기구이, 동태찌개, 제육백반은 물론이고 시원한 양푼냉면 한 그릇도 4천원이면 배를 탕탕 두드리고 나온다. 어릴 적에는 시골 장터에 즐비하게 늘어앉은 순대국 아줌마가 그토록 부러울 수가 없었고 그 순대국이 너무도 먹고 싶은 나머지 배에서 쪼르르 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요즘은 광장시장에서 단돈 4천원이면 함포고복하며 순대국을 먹을 수 있었다. 좌우지간 돈이 썩어나는 털찜쫄부들이 한상에 몇백만원도 넘어가는 점심을 먹는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듣긴 했지만 5천원짜리 된장찌개나 몇백만원짜리 원숭이골 요리나 한끼 때워 배 두드리기는 제놈들이나 내나 매한가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머리에서 지진이 났냐? 몬도가네처럼 원숭이골을 몇백만원씩 주고 사먹게? 그딴건 거저 먹으라고 사줘도 안먹는다.”
게다가 구입해야 할 물건이 채 도착하지 않기라도 하면 시간이 좀 남아돌아가는 짬을 이용해 쓰렁쓰렁 극장에도 심심찮게 갈 수 있으니 여간 신나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에도 김가다는 톰 크루즈가 주연한 ‘미션임파서블3’를 보았었다. ‘다빈치코드’처럼 엉정벙정한 영화에 비하면 본전 생각 하나도 안날만큼 끝내주는 블록버스터 영화였다.
“옛날 같았어봐, 어디 꿈이나 꿀 일이야? 이본 동시상영관에 한번 들어가기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말이지.”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