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지금 남편과 결혼하시겠어요?” 어느 강사가 60세 이상 여성 200여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용감하게 한 명이 손을 들었다. 다시 결혼하겠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여인은 치매기가 있었다. 맨 정신인 여자가 지금 남편을 다음에 태어나서도 남편으로 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얘기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대개 여성들이 배우자를 찾기 시작하는 적령기가 되면 모성애라는 본성이 조금씩 나타난다고 한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섹시하고 멋진 이상형보다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을 줄 수 있는 평범한 남자를 선택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 더 들어 갈수록 결혼 적령기를 놓칠지 모른다는 초조함이 더해 이 모성애 본성은 더욱 영향을 발휘하게 된다.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야. 성실한 남자 만나 아이 낳고 서로 맞추고 살면 되잖아.” 그러나 결혼 후엔 후회하고 다시 태어난다면 이 남자와는 절대 결혼을 안하겠다는 마음이 서서히 생겨나 시간이 흐르면서 확고히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결혼 전 잘 생각해 볼 일이다.
“나도 이젠 내 인생을 살고 싶어요. 지금까지 엄마로서 자녀들 뒤치다꺼리 하고 아내로서 남편 뒷바라지 하다보니 내 인생은 없어졌어요.” 결혼 때 발동했던 모성애 본성이 살다보니 작동을 멈추고 서서히 자아본성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생이 무상해지고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인가? 내가 이대로 계속 살아도 되는 것인가?” 모성애 본성에 눌려있던 자아본성이 갱년기를 거치고 황혼에 이르면서 스위치가 켜지고 확장되는 것에서 인생의 비극도 시작된다. 내가 없어져 버린듯한 인생에 대한 후회와 외로움, 공허함이 모성의 빈자리를 차지하게 될 때 황혼이혼이 급증하는 것이다.
이런 비극을 최소화하려면 젊을 때부터 모성애 본성과 자아본성을 잘 조화해서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결혼 전에도 결혼 적령기라는 부담에서 벗어나 서두르지 말고, 내 개성과 잘 맞고 성격과 가치관을 되도록 만족시킬 수 있는 배우자를 선택하여야 하는데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전 이성에 대한 직간접의 공부도 해야 되고 연애경험도 어느 정도 쌓아야 한다.
사랑의 감정은 생물학적으로 자동 생성될 수 있지만 나와 잘 맞는 좋은 배우자를 볼 수 있는 눈은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감성 지식이고 배워야 하는 교감 능력과 기술인 것이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꾸준히 자아본성이 성장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콩나물이 자라날 때 물을 주면 전부 흘러내리는 것 같지만 꾸준히 주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성장하듯 내 인생에서 자아본성도 자라는 것 같지 않지만 꾸준히 물을 주고 키워야 한다. 물주기 귀찮아 많은 물 속에 담가두면 그 콩나물은 성장하지 못하고 썩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숨겨져 있던 자아본성을 나중에 한꺼번에 키우려 한다면 파경을 맞을 확률이 매우 높아질 것이다.
일단은 자신과 잘 맞는 배우자와 결혼해야 하는 것은 물론 모성애라고 하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힘에 대해 적절히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 때 유행했던 ‘화성남자 금성여자’처럼 부부는 인간이라는 한 테두리 안에 있지만 감성 시스템 면에서는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 다른 종류라는 것을 서로 인정하고 배려와 공감의 기회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녀간 감성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에 이 다른 점을 이해하고 보완해 주려는 사소한 노력들이 콩나물에 계속 물주는 노력인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관점으로 보아도 남자는 수렵시대 종족 안에서 서열이 높아야 여자를 얻고 2세를 낳아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었다. 그래서 서열 순위를 올리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한다. 반면 여자는 남자들이 사냥과 전쟁을 위해 마을을 비운 동안 자신과 아이들을 지키려면 다른 여성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었기에 네트워킹을 위한 감성이 우선되었다.
서열 순위에만 관심 있는 남성과 네트워킹을 중요시하는 여성의 감성차는 수만년 전부터 우리 유전자 속에 깊이 뿌리 내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년에 남자들은 친구를 못 만들고 여자들은 쉽게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부부가 결혼해서 사는 것은 이러한 차이를 인정할 때까지 전투를 하고, 그 결과로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도록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배 나온 남편도 멋있다고 칭찬해주고, 아내의 잔소리도 함께 있고 싶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때 성숙한 잉꼬부부가 될 수 있다.
부부가 많이 웃는 집은 서로를 인정하며 배려하기 훨씬 쉬워진다. 날마다 웃는 집은 행복이 와서 머무는 집이다. 많이 웃는 남편들은 밖에서 친구 사귀기도 수월하고 아내와의 공감 능력도 커진다. 날마다 웃는 부인들에게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100% “아니요”라고 대답은 안할 것이라는 것은 필자의 착각일까?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15초 웃음의 기적>, <웃음은 인생을 춤추게 한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