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은 조선이 낳은 최악의 폭군이었다. 선왕인 성종과 완전 180°도 다른 패륜의 군주다. 연산군 재위 시절 두 차례의 사화가 발생해 수많은 지식인들이 무고한 희생을 치렀다.
사화의 시초는 무오사화였다. 사림의 큰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비극의 발단이 됐다. 김종직의 글이 어린 단종을 내쫓고 권좌에 오른 세조를 중국의 의제에 빗대 비판한 글이라는 정치적 공세에 사림은 속절없이 당했다.
두 번째 비극인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죽음이 단초가 됐다. 둘째가라면 저승에서도 벌떡 일어날 조선 최고의 간신 임사홍이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연산군에게 고해 바쳤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에서 자신의 권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선비들의 피로 맛보았다. 특히 자신의 모친
의 죽음은 정치공세를 넘은 천재일우의 복수전이라고 봤다.
성종 시절 권세가들이 주요 목표가 됐다. 살아있는 이는 죽였고, 죽은 이는 무덤을 파헤쳤다. 임사홍의 간계 덕분에 조선의 의기 있는 선비들의 씨가 마를 정도였다.
연산군의 패도 정치는 임사홍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역사는 기억한다. 군주를 모시는 자가 누구냐에 따라 역사는 달라진다.
최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문재인 대통령 측근들의 언행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고 김영삼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 김기수 실장의 “비서는 귀는 있어도 입은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