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목을 베는 칼이다”라고 했다.
조선 태종은 두 차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 이 때 태종을 도와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정적 제거에 나섰던 이들은 바로 처남인 민무구 형제였다.
이들은 태종의 왕위 찬탈극 최대 공신임을 자부하며 권세를 뽐냈다. 이들의 오만방자함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이들의 전횡에 불만을 품은 정적들이 세를 모으기 시작했다.
<태종실록> 태종 7년 7월10일 기사에 따르면, 개국 정사 좌명 공신 영의정부사 이화(李和) 등이 상소해 민무구·민무질·신극례 등의 죄를 청했다.
이들는 “<춘추(春秋)>의 법에 인신(人臣)의 죄 가운데 금장(今將)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이는 사심(邪心)을 막고 난원(亂源)을 방지하자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또한 “여강군 민무구·여성군 민무질 등은 궁액(宮掖)에 인연해 지나치게 성은(聖恩)을 입어서, 일가 형제가 모두 존영을 누리니, 마땅히 조심하고 삼가고 두려워해 그 직책을 정성껏 지켜서, 감히 교만하고 방자함이 없이 성은을 갚기를 도모해야 할 터인데, 도리어 분수를 돌보지 않고 권병(權柄)을 전천(專擅)하기를 생각해 속으로 금장(今將)의 마음을 품고 발호(跋扈)할 뜻을 펴보려 했다”고 간했다.
즉 외척으로서 본분을 지키지 못하고 분수를 모르고 설쳤다는 주장이다. 또 민씨 형제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태종의 분노를 자초하는 설화를 일으켰다. 결국 태종은 외척의 발호를 방지하고자 형제를 사사한다.
최근 일부 정치인들의 각종 의혹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당사자들은 결백을 주장하고 있으니 검찰 수사로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의혹은 검찰 수사로 풀면 된다. 조용히 검찰 수사를 기다리면 좋겠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