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6개월과 KBS, 언론재단
청와대 주인이 바뀐지 6개월이 되었다. 청와대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한결같이 부정적이다. 이 대통령이 자신했던 경제조차 낙제점이고 외교, 남북문제 등도 엉망이라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이제부터 잘하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인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신세대들의 승전고에 빌붙어 한 판 해보겠다는 식이다. 그런데 그 모습에서 신뢰감이나 진정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청와대가 KBS와 한국언론재단에 대해 보이는 정치력이 너무 한심스럽고 분통이 터지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2일 한나라 사무처 직원 초청 만찬 석상에서 “엔도르핀이 돌고 있다.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 최고로 신나는 날이다”라고 말했다. 이날은 ‘청와대가 KBS 사장 선임에 사실상 개입하고 있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한 날이다.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이동관 대변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유재천 KBS 이사장 등이 지난 17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비밀리에 대책회의를 갖고 KBS 사장후보들을 면접한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대통령이 정상적인 국정을 수행하는 과정이었다면 ‘엔도르핀’ 말이 나왔을까?
청와대가 정치를 잘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치에 대한 철학과 원칙, 그 방법론만큼은 국민의 가슴에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한두 가지 정책에서 실패했어도 미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된다. 그러나 청와대 주인은 취임 이래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나? 그는 촛불과 공영방송 등에 대해 오만하고 독선적인 정치가라는 이미지를 굳히는 일만을 골라했다. 그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정치를 한 기억이 없다. 그는 박정희, 전두환식 정치를 현실화시키는 언행으로 일관했다. 그의 참모, 여당, 감사원, 검찰, 법원 또한 대통령의 퇴행적 정치력에 아부하는 후진적 모습을 국민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청와대가 지난 수개월 동안 보여준 정치는 일관된 면이 있다. 그것은 ‘동지에게는 상을 주고 적에게는 고통과 손해를 주는 정치’다. ‘고통과 손해’는 정권이 바뀌었으니 과거 정권에 임용된 공직자는 자리를 비워달라는 요구 등이었다. 이 요구는 법에 보장된 임기라는 원칙은 철저히 짓밟았다. 민주사회에 지켜야 할 규범이 여럿 있지만 명문화된 법은 만인이 준수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부터 법치주의를 짓밟고 있다. 우리 사회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정권교체를 두 번 성취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민주주의 관행을 뿌리부터 짓밟는 짓을 골라하고 있다.
엊그제 폭로된 KBS 관련 ‘7인의 비밀회동’은 충격적이다. 참석자의 한 사람인 김은구씨가 공모신청을 했다. 청와대는 “KBS 사장선임에 개입 안 한다”고 했던 거짓말이 들통났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주선한 모임은 KBS 사장 ‘사전 면접’ 의혹과 함께 현행법 위반이란 지적을 받는다. 방통위원장은 정치적 중립을 저버린 행동을 했다. 유재천 이사장은 KBS 사장 청와대 관여의혹을 은폐한 추한 모습을 드러냈다.
KBS 사장 목을 치는 작전에는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권력기관이 총동원되었고, 여당 추천 KBS 이사들도 권력의 애완견과 같은 모습을 실천했다. ‘한 통속’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추한 정치현실이다. 법원 쪽도 청와대 쪽 입맛에 맞는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행정법원, 서울지법이 연이어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에 대해 공영방송의 위상을 후퇴시키는 결정을 내놓았다. 서울행정법원은 정 전 사장이 이 대통령의 해임처분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고 낸 해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 데 이어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는 “대통령에 KBS 사장 해임권이 있다”면서 정 전 사장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사법 쪽의 판결은 ‘임면’과 ‘임명’에 대한 국어사전적 의미조차 외면한 몰상식한 것이다.
언론재단 경영진은 청와대·국정원의 경영진 흔들기 속에 22일 “정부·노조 사퇴요구를 거부한다”는 입장표명을 통해 “독립성·생존권 확보 판단 시 명예롭게 퇴진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와 야당은 “언론재단에 대한 권력의 압박은 공작정치 부활”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언론재단 경영진의 행동은 이 사회에 원칙을 세우겠다는 실천적 의지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모범적 사례다. 언론재단 경영진이 정부와 노조로부터 받는 고통은 민주법치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정보원은 언론재단의 경영진과 노조를 이간질시키는 추악한 책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청와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아래서 하는 일을 위에서 모른 척 하는 것은 독재정권이 흔히 써먹던 더러운 수법이다. 이명박 정권이 선거로 집권했으면 선거에 따르는 법과 원칙, 관행을 존중해야 한다. 정치는 연속성이 있다. 오늘의 여당이 내일의 야당이 되는 것 아닌가? 청와대가 기본적인 정치적 논리에 반하는 일을 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청와대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시민사회를 향해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일은 더 웃기는 일이다. 청와대는 KBS, 언론재단 문제에 권력이 불법 개입한 사실들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해 관련자를 응징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도 법과 원칙을 준수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사장을 미리 면접한 정정길, 이동관, 최시중 등은 파면되어야 하고 유재천 이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 청와대는 미래 정치의 청사진을 제시하기 전에 현실 정치의 상식을 지키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청와대가 정치의 ABC를 짓밟으면서도 눈 감고 아웅 하는 식의 모습을 계속 한다면 청와대의 밝은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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